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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서울역 농성장 24시...땡볕 살라 '승리'를 일궈내는 곳

작성일 2000.08.04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2837
서울역 농성장 24시

땡볕 살라 '승리'를 일궈내는 곳

더위도, 주린 배도, 경찰폭력도 노동자 전진 못 막는다
폭력진압 담은 사진·비디오 보며 시민들도 함께 분노

7월의 마지막날 오전9시 서울역광장. 지난 27일 시작된 공안탄압분쇄 민주노총 지도부 중앙농성이 5일째를 맞고 있었다. 지도부 농성과 함께 예고 없이 결행된 단식투쟁을 5일째 벌이고 있는 단병호 위원장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곤한 기색을 빼곤 여유가 느껴졌다.

단병호 위원장은 "지도부 농성이 시작되고 8월 투쟁계획이 발표되자 정부는 상당부분 압박을 받으며 공안탄압, 현안문제에 대해 구체적 고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단 위원장은 이어 "이번 지도부 농성은 하반기정세와 관련 대단히 중요한 고리가 될 것"이라며 "단위노조의 적극적인 참여가 핵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7일 단위노조대표자 지역농성 결합, 11~12일 상경투쟁, 15일 전국노동자대회와 통일대축전 등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다면 하반기에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서 투쟁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별연맹 대표자들도 독서에 빠져있거나 향후 투쟁방향을 놓고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면서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를 훌쩍 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용식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지도부 농성은 이번 투쟁의 성격과 방향에 대한 지도부와 조합원의 인식을 일치시키는데 가맹조직이 책임있게 나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롯데, 사회보험 등 장기투쟁노조들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민주노총 지도부, 조합원, 시민들이 함께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강조했다.

농성장도 이젠 제법 꼴을 갖추고 있다. 7월10일 단병호 위원장을 연행하고 폭행한 남대문서 경찰들은 농성 첫날 천막을 설치하려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또다시 폭력으로 제지해 민주노총 임원들과 산별대표자들은 노숙농성에 돌입했던 터였다. 27일~29일 사회보험노조의 상경투쟁을 필두로 한 민주노총의 집중투쟁을 거치면서 한여름 뙤약볕은 가릴 수 있도록 차일막이 들어섰다.

또 관우회노조가 깔판을 기증해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몸을 적시는 일도 피하게 됐다. 지난 30일부터 정부, 롯데, 민주노총사이에 시작된 삼각교섭도 경찰쪽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이유라면 이유였다. 큰 길 건너편 대우빌딩 꼭대기에는 청와대에서 서울역광장을 직접 볼 수 있는 CCTV가 설치돼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교섭전망에 대한 여러 의견이 쏟아졌다. 김연환 공공연맹 위원장은 "공안탄압의 실질적인 표적은 사회보험노조라고 생각한다"며 "저들은 사전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롯데를 첫 제물로 삼았지만 처음부터 그 의도는 빗나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처리를 보면 정부가 방법만 바꿨는지, 목표를 수정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전10시. 밤샘교섭을 벌였던 이수호 사무총장이 돌아오면 최선정 노동부장관, 호텔롯데의 장성원 사장과의 교섭결과를 듣고 곧 농성 지도부 전체회의가 있을 터였다. 그러나 전화를 통해 간단히 전해진 교섭결과를 낙관하기에는 너무 일러 보였다.

서울역 주차장을 뒤로한 농성장 옆으로 민주노총 요구가 씌어진 현수막이 농성투쟁의 의미를 웅변하고 있다. 농성장 앞 서울역 광장 나무와 나무사이에 걸려있는 사진들은 지난 6월29일과 7월1일 호텔롯데노조와 사회보험노조를 짓밟은 공권력의 만행과 새한노조에 자행된 용역깡패의 섬뜩함을 증언하고 있다. 휴가를 떠나고 돌아오는 시민들은 믿기지 않는 듯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농성 첫날부터 결합한 새한노조와 롯데노조 조합원들은 한낮에 내리쬐는 뙤약볕과 가끔씩 퍼붓는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농성장을 보위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박병영 새한노조 조합원은 "10명이 24시간 교대로 불침번을 서고 있다"며 "우리의 각오가 이 정도로 확고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사무총국 낮 당직자는 김태현 정책기획실장과 김유진 정책부장. 농성장 정리부터 물품구입, 상황일지 작성까지 농성장 뒷수발은 이들의 몫. 이근원 조직쟁의실장을 비롯한 조직쟁의담당자들은 언제 있을 지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해 사실상 24시간 비상대기상태다.

오후가 되자 전교조 서울지부, 홍근수 자통협 의장 등 농성장 지지방문이 줄을 이었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전교조 조합원들의 대화에서는 최근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김귀식 전 전교조위원장의 선전이 단연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저녁6시를 넘겨 최선정 노동부장관 일행이 방문했다. 노사협상이 일단 결렬된 뒤여서 최장관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대화는 핵심적인 인식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겉돌고 있었다.

한편 저녁7시가 넘어서고 해가 떨어지자 호텔롯데 공권력투입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TV가 설치되자마자 주위를 지나가던 시민들이 화면을 둘러쌌다. 경찰폭력현장을 지켜보던 일부 시민들은 "롯데회장이 누구냐?", "저런 나쁜 ×들" 따위의 노여운 목소리를 높였고, 충격을 받은 듯 한차례 비디오상영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낮에 진행된 선전전과 집회를 마치고 호텔롯데 노조원들이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고 사무총국 밤 당직자로 김태연 기획국장과 박하순 정책부장이 결합했다. 사위가 어둑해지자 서울역 노숙자들의 껄끄러운 방문이 시작됐다. 밤11시~12시가 농성자들의 취침시간대지만 이러한 당황스러운 방문은 밤을 완전히 넘기기까지 계속될 것이었다.

<노동과세계> 이재철 leecc@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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