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최한배 전 전국노운협 사무국장 영면
서울 삼성병원(일원동)장례식장 발인 2월 11일
‘구로동맹파업’ 최한배씨, 췌장암과 마지막 싸움
병세악화돼 호스피스 병원에
노조결성 지원 구속·옥고 치러
“미완의 과제 다음 세대가…”
“노동운동과 중국에서의 사업 경험을 토대로 북한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췌장암으로 1년 이상 투병해온 1세대 노동운동가 최한배(62·사진)씨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호스피스 시설인 보바스기념병원으로 옮겨 있다. 지난 6일 오후 병실에서 최씨는 진통제 처방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그의 말은 아내 김종민씨가 대신 전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의 최씨는 1978년 일찌감치 노동 현장으로 들어갔다. 청계천 근처 경동교회를 다니면서 뚝방지역 빈민·피복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알게 되고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이다.
그는 84년 보일러공으로 취업한 서울 구로 대우어패럴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 여파는 태풍의 눈이 되어 효성물산·선일섬유 등 영등포·구로공단에 노조 결성 바람을 일으켰고, 이듬해 이 지역 노조들이 연대해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한 ‘구로동맹파업’으로 확대됐다. 그는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사건 등으로 구속됐다가 87년 6·29 선언으로 석방된 뒤 공개적인 노동운동가로 나선다.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전국노운협) 사무국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노조결성 지원 활동을 했다. 88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연세대 정문에서 “가자! 여의도로”라고 외치며 경찰 봉쇄선 돌파를 시도하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새겨져 있다. 그뒤 1년반 실형을 살고 나온 그는 93년 노동현장을 떠나 전문경영인의 길을 택했다. 전자부품 업체의 중국법인 총경리, 본사 대표이사 등을 거치며 15년동안 중국시장을 주로 개척했다.
최씨는 투병중 노동운동 15년·기업경영 15년의 삶을 정리한 자서전 <길>을 최근 펴냈다. 기록을 꺼렸던 운동권 주역의 기록이어서 ‘한국현대노동운동사’로도 읽힌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 말미에 소략하게 정리돼 있다. 자본주의 부작용이 심한 중국, 그리고 북한에서 펼치고 싶었던 기업가의 꿈 등.
“우리 세대가 꿈꾸었던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미완의 과제로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졌다. 다음 세대는 새로운 시대적 과업으로 우리 세대의 명제를 대체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지 않은가. 이젠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겠다.”
한겨레신문 : 2012.02.07 20:21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