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부 비정규직정책에 대한 비판의견 막는 인권위, 국가인권회피위원회인가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 등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강행 단독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감시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정부의 정책 관철에 저해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해서든 인권위의 개입을 막아서고 있다. 이전까지 인권위는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검토해온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 어깃장의 이유인 것이다.
인권위 자료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대한 의견표명의 건(요약)>에 따르면 인권위는 정부의 비정규직 기간연장은 △법률의 입법취지와 부합하지 않고 △정규직 전환이나 기간연장 남용 대책도 미흡하다는 의견을 검토해왔다. 또한 정부의 파견노동 금지 완화에 대해서도 △입법취지에 맞지 않고 △파견고용을 고령자 및 관리•전문직의 보편적 고용형태로 고착시킬 우려가 있으며 △파견노동자 보호조치가 미흡하다는 의견을 검토해왔다.
인권위가 검토한 의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내하청에 대한 원청의 관여를 불법파견의 징표에서 제외시키는 정부안은 “사용자의 위장도급 유인이 증가될 우려”가 있다고 봤고, 일반해고 기준 및 취업규칙 변경의 요건 완화도 “손쉬운 해고 또는 근로조건 저하의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검토 중이었으나, 부적격 인권위원들의 딴지 행위로 인해 인권위의 비판적 검토 의견은 결국 대폭 후퇴되거나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보호 역할을 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나 보며, 사실상 권력에 종속됐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인권위는 지난 11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대한 위와 같은 의견안건을 다루기 위해 전원회의를 개최했지만, 어처구니없는 토론 끝에 안건을 다음 회의로 세 번째 미뤘다.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할 생각이 있다면 비정규직 종합대책 등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았던 올해 초에 의견을 내놨어야 했다. 그래야 문제점을 바로 잡고 국민들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시종일관 정권의 눈치를 보며 논의를 이미 두 차례나 미뤄왔다.
눈치 보기는 이번 전원회의에서 쏟아낸 인권위원들의 주장을 통해 잘 들어난다. “(정부가) 한창 논의 중인데 우리가 끼어들어서 무슨 의미가 있냐”(윤남근 위원),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인권위 입장을 밝히는 것은 조심스럽다”(최이우 위원), “인권위 안을 보태면 혼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한태식 위원)는 말을 듣고 있자면, 일을 하자는 것인지 자리나 차고앉아 인권위를 유명무실화 시키려는 것인지 한심하다. 심지어 유영하 위원은 정부가 주장하는 ‘정규직 과보호론’을 그대로 복창하며 인권이 아닌 자본의 시각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뿐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에서는 “인권에 관한 법령·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 및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이라고 인권위원회의 업무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1990년에 가입한 유엔 사회권규약에도 노동권을 국제 인권조약의 핵심 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인권위원들은 “노동이 인권위원회와 무슨 관계냐”라거나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인권위가 왜 자꾸 노동에 끼어드냐고 하더라”, “(비정규직 종합대책)자료를 봐도 모르겠다”라며 인권위원 답지 않는 무지를 드러내며 어깃장을 놓기 일쑤였다.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직 대책에는 대책이 없고, 박근혜 정권의 인권위에는 인권이 없다. 이러니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한국의 인권위를 등급보류로 판정해 사실상 강등한 것이다.
2015. 5. 14.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