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전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51594.html
[토요판] 커버스토리
한상균이 띄우는 옥중편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1심 법원이 징역 5년에 벌금 50만원을 선고(7월4일)했다. 체포(지난해 12월10일)부터 판결까지 ‘이례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테러리스트’ 비유,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직접 지휘한 체포작전,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의 체포과정 생중계, 존속살인죄에 버금가는 검찰의 구형(8년), 검찰 기소를 모두 수용하고 변론 내용은 모두 배척한 법원 선고…. 지난해 조계사 자진퇴거 때 기자회견을 끝으로 한상균의 말은 국민에게 직접 전달될 통로를 갖지 못했다. 그를 중형에 처한 정부와 국가기관의 논리만 부각되고 전파됐다. 선고가 끝나자마자 한상균은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방청석을 쳐다보며 끌려나가듯 법정을 떠나야 했다. 그의 ‘허락받지 못한 말’을 <한겨레>가 옮긴다. 그는 선고 이틀 전과 사흘 뒤 편지를 써서 민주노총 후배에게 보냈다. 지난해 체포 당시 상황과 구치소 생활, 검찰 구형과 선고 결과에 대한 심경과 고민을 담았다. 이 시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노동 배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도 비판했다. 편지 수신인의 동의를 얻어 한상균의 ‘옥중편지’를 띄운다. 모두·최후진술을 제외하면 재판 이후 동료 노동자들과 국민에게 처음 전하는 그의 마음이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선고 공판 이틀 전인 2일 후배에게 쓴 옥중편지. 민주노총 제공
“피고인을 징역 5년 및….”
판사가 형량을 말하는 순간 방청석(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 417호)에서 격한 반응이 솟구쳤다. ‘5년’이란 단어가 바늘이 되어 찌르자 선고 공판(7월4일 오후 3시) 동안 팽팽하게 차올랐던 긴장이 풍선 터지듯 폭발했다. 성난 소리에 묻혀 벌금 액수는 들리지조차 않았다. 판사가 “조용히 하라”며 판결문을 읽어나갔고, 고성과 비난이 문장을 마디마디 토막냈다.
“벌금(50만원)을 납입하지 않으면….” “5년이 말이 되나.”
“하루 10만원을 1일로 환산해….” 38억원의 벌금(조세포탈)을 미납한 전재용(전두환 차남)에겐 최근 법원이 노역 하루에 400만원을 쳐줬다.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하고….” “진짜 도둑은 안 잡고.” “재판에 불복이 있을 땐 7일 안에….” “한상균은 무죄다.”
선고를 마치자마자 재판부(심담 부장판사)는 피하듯 자리를 떴다. 법원 경비대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법정 밖으로 빼냈다.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방청석을 쳐다보며 끌려나가듯 법정을 떠났다. “위원장 함부로 하지 마.” 200여석의 좌석이 부족해 서거나 통로 바닥에 앉아 공판을 지켜본 사람들의 항의가 법정에서 끓어넘쳤다.
선고 전후 그의 허락받지 못한 말을 <한겨레>가 전한다. 한상균은 지난해 12월10일 조계사에서 자진퇴거하며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직전 기자회견이 조합원들과 국민을 향한 그의 마지막 공개 발언이었다.
한상균은 선고 공판 직전인 2일과 공판 당일 민주노총 후배에게 편지를 썼다. 구치소의 검열을 거친 편지에 그는 체포 상황과 구치소 생활, 가족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았다.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박근혜 정권의 압박, 노동을 희생양 삼은 정부 정책을 비판했고, 민주노총의 역할과 대응 방향도 당부했다.
<한겨레> 토요판은 지난해 조계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그를 인터뷰(12월5일 커버스토리 ‘물대포 앞의 촛불’)해 ‘민중총궐기’(11월14일)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었다. 체포 5일 전이었다. 민중총궐기 주도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그의 이야기를 7개월 만에 다시 전한다. 편지 수신인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그의 편지는 때로 담담하고 때론 격렬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장대비가 내리면 고민도 잡생각도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쉼 없이 울어대는 뻐꾹새 소리에는 죽어라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는 노동자 민중의 한숨 소리가 더해졌는지 슬픈 가락이 되어 들려옵니다.
(정부는) 분노가 모여 폭발할까봐 두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를 분노의 싹을 자르는 기회로 삼고자 국가 폭력은 작당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백남기 농민에 대한 어떤 사과도 없지만 우리는 반드시 국가 폭력의 죗값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국민의 반이 노동자이고 반은 노동자의 가족과 이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지 정권의 적이 아닙니다. 민생파탄의 책임을 묻기 위해 13만명의 노동자 민중이 모여 외쳤습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민심의 물결이었습니다. 잠시 위임한 권력에 취해 제왕적 권력인 줄 착각하고 있다면 어서 깨어나 노동자 민중의 절규를 들어야 합니다. 차벽과 물대포로 민심을 가두고 싶겠지만 민심은 가둘 수도 없고 포승줄로 묶을 수도 없다는 것을 민주주의의 역사는 말합니다.
공권력의 불법을 부인하기 급급한 검찰은 8년형을 구형하면서 소요죄(경찰이 1986년 이후 처음 소요죄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검찰 기소 과정에서 제외)까지 엮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정부는) 국민소득 4만불의 선진국이 되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이라 말하지만, 불안전하고 저임금 구조를 벗어날 수조차 없는 노동자가 1천만명이 되는 세계 최악의 소득불평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민중의 파업과 집회·시위는 누가 뭐라 해도 정당하고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선언입니다.
선고를 이틀 앞둔 2일 그는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글자들을 불러냈다. 떠오르는 순서대로 정리한 생각들이 단락들을 이뤄 편지지 8장 분량이 됐다.
노동자들이 무죄라 생각하면 무죄한상균 개인은 가둘 수 있겠지만
분노한 노동자는 가두지 못할 것
정권은 2천만 노동자의 영혼까지
포승줄로 묶으려 하는 것 아닌가 반년 넘게 공소사실 공방 벌였는데
공권력의 손을 들어준다는 말뿐
노동자·민중의 절규 귀 닫은 재판부
고용불안 고려해 5년만 선고했으니
고맙게 생각하라는 말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