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모욕한 전태일 재단에 유감을 표한다
조선일보와 전태일 재단이 공동기획한 기획기사 ‘12대 88의 사회를 넘자’가 10회에 걸쳐 보도됐다. 조선일보와 전태일 재단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극복한다’는 그럴싸한 기획의도를 밝혔지만 그들이 내놓은 답이란 고작 기간제법을 개악하여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그들의 희망을 빼앗자는, 노조할 권리조차 빼앗는 원청의 선의에 기대자는 수준이다.
조선일보의 반노동 행태야 이미 익숙한 일이라 치더라도 문제는 전태일 재단이다. 이 땅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전태일’의 어느 부분을 계승하여 살고 있다. 전태일이 ‘너는 나다’라고 말했듯 ‘우리는 모두 전태일’이다. 전태일 재단은 이런 전태일의 마음과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모인 곳이다. 전태일 재단이 ‘일하는 모든 우리’를 모욕하고, 조직된 노동의 생동을 그저 기득의 욕심으로 폄훼하는 기사에 공동의 이름을 올린 것은 모든 노동자를 위해 제 몸마저 불살랐던 전태일의 이름을 욕보인 것이고, 동시에 그대로 우리 모두의 이름을 욕보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전태일을 욕보이는 전태일 재단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또 전태일 재단의 일부 인사들이 조선일보의 저열한 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그들이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이거나 어떤 그럴싸한 이론을 들먹여도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들의 이름을 ‘전태일’이라는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수식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전태일 재단이 이번 사태가 이 땅 모든 노동자들에게 어떤 모욕을 줬는지 무겁게 인식하길 촉구한다. 건설현장에, 제철소와 발전소에, 도로 위 화물트럭에, 빌딩 속 작은 청소도구함에, 세상 모든 곳곳에 여전히 살아있는 수백만의 ‘평화 시장의 어린 여공’과 ‘전태일’이 있다. 감히 전태일의 이름을 참칭하여 이들을 모욕했음을 인식하길 촉구한다.
민주노총은 오늘의 전태일을 위한 투쟁을 결의한다. 오직 그것만이 1970년 그 날 이후 한 순간도 잊지 않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2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