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노동시간 단축은 불평등 저성장의 해법
생산성 궤변으로 막을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동아일보가 24일 발족한‘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과 관련해 “생산성이 낮은데 노동시간만 줄이면 경제에 짐이 된다”는 취지의 사설을 냈다. 사설은 노동자를 장시간 저효율 노동에 묶어두려는 경영계의 낡은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낮은 생산성'의 책임은 노동자가 아닌 시스템에 있다
세 사설의 핵심 논점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으므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는 생산성 저하의 본질을 왜곡하고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의도다. 두 언론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OECD 평균보다 낮다며 “더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낮은 생산성은 노동자가 덜 일해서가 아니라, 장시간·저임금 구조와 불평등한 산업정책, 낮은 설비투자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2023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1달러로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았지만,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130~157시간 더 길었다. 오래 일해도 성과가 낮은 구조 자체가 문제다. 국제노동기구(ILO)는“노동시간 단축이 기업의 자동화와 혁신 투자, 노동자 숙련도 향상을 촉진해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위기일수록 노동자 보호, 고용 유지를 선행해야 한다
문제의 사설은 저성장과 불확실성을 이유로 노동시간 단축이 시기상조라 주장한다. 그러나 위기일수록 노동자 보호와 고용 유지가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독일은 ‘Kurzarbeit(단축근로제)’를 통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정부가 임금을 지원함으로써 대량 해고를 막았다. OECD는 이를 “고용 안정과 경기 회복에 기여한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지금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 고용 양극화, 내수 침체라는 삼중 위기에 처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위기 대응을 위한 구조개혁이지, 미룰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노동 유연화 선행' 주장은 개혁의 본질을 흐리는 요구다
동아일보 사설은 “근로시간 단축에 앞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연봉 관리·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제외), 고용 유연성”등을 선행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는 현행 노동시간 규제를 무력화해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노동시장 개혁 로드맵'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은 결국 노동자 보호 장치를 해체하려는 경영계의 요구를 대변하는 것이다.
주휴수당 폐지 주장은 취약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폭거다
심지어 동아일보 사설은 소상공인 부담 경감을 이유로 '주휴수당' 폐지를 언급했다. 실노동시간 단축과는 무관한, 최소한의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주장이다. 주휴수당은 단시간 노동자나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노동의 대가이자 실질적 생활임금이다. 주 4.5일제 논의를 틈타 이를 폐지하려는 것은 제도 변화의 부담을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비열한 행위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 사망률, 최장 노동시간, 최저 출산율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투자다. 노동시간 단축은 과로사회 해소, 일자리 확대, 삶의 질 개선, 생산성 제고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다. 민주노총은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실현하고, 노동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루는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 정부는 소수의 기득권이 내세우는 경제 위기론에 흔들리지 말고, 국민 대다수의 삶을 개선할 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2025.9.26.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