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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
보 도 자 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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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9일(월) |
이승우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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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본 행동 기반 안전 관리 프로그램의 문제점”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워킹페이퍼 발행
민주노동연구원 이승우 연구위원이 근래에 점차 확산하고 있는 행동 기반 안전 관리 프로그램을 노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워킹페이퍼를 발표함.
산재의 80-95% 정도는 노동자 때문에 발생한다?
- ‘행동 기반 안전(Behavior Based Safety)’이란, 일터에서의 사고, 질병 예방을 위해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관찰, 분석한 뒤, 특정 행동을 장려하거나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안전 관리 기법임.
- 산재의 80-95%가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에 발생한다는 주장이 행동 기반 안전 프로그램의 핵심 기조임. 국내 경영자들도 이와 유사한 인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행동 기반 안전 관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제도.
- 하지만 행동 기반 안전 관리는 본질적으로 여러 결함이 많은 프로그램으로서 서구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아옴. 심지어 행동 기반 안전을 정립했던 학자들 역시 그것의 내재적 문제점을 비판하고 수정되어야 함을 주장하기도 함.
행동 기반 안전 관리 프로그램의 기원과 주요 내용
- 행동 기반 안전 프로그램은 1970년 말 이론적으로 정초되었으나, 그것의 이념적 연원은 하인리히와 심리학자인 스키너에서 시작됨. 하인리히는 산재 발생 원인의 약 88%가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이라는 부실한 분석으로 행동 기반 안전의 논리적 토대를 제공. 스키너는 조건화된 외부 환경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닌 외부적으로 통제되는 대상으로 간주함.
- 행동 기반 안전 프로그램은 이들의 이론을 토대로 일터에서 대다수 산재의 발생 원인을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에서 찾은 뒤, 적절한 보상 혹은 처벌을 통해 노동자의 행동을 규율, 통제함으로써 안전을 달성하려 함. 이처럼 안전 관리에 성과 보상 및 징계 제도를 연계하고 있으며, 안전 수칙 위반 정도가 심하면 해고까지 해야 한다고 강변.
- 행동 기반 안전 관리의 구체적 실행 방식은 아래와 같으며, 국내 컨설팅 업체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함.
• 안전하지 않은 행동(부상 및 사고 직전 기록에서 수집) 파악
• 적절한 관찰 체크리스트(부상과 관련된 행동을 포함) 개발
• 전체 구성원 대상으로 홍보하며, 특히 진행자, 현장 관찰자 등에게 실행 방법 교육
• 행동 관찰을 통해 안전 행동의 지속적 평가
• 구두, 그래픽, 서면 등의 방식으로 결과 피드백 제공
• (추가적으로) 안전 목표 설정, 교육 및 인센티브 제안
행동 기반 안전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한 국내 사업장 사례
- 사업장 사례를 살펴본 결과, 노조와의 협의 없이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도입하고 있었음. 노동자의 행동을 관찰, 통제, 교정하려는 행동 기반 안전 기법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 중이며,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에게는 사전 안내도 없이 이들의 행동을 사진으로 찍어가기도 함. 또한 일부 사업장에서는 산재와 개인 및 부서 평가와 연동시키고 있음.
① SPC 삼립: 2025년부터 행동 기반 안전 관리를 도입한다고 공식화했으나, 노동자나 노조에 전혀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 중. SPC 삼립의 공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시화공장에서는 기존 관리자 아닌 외부인들이 올해 7월부터 공장 곳곳에서 일선 작업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으며 데이터를 수집 중에 있음. 이들이 누구냐는 질문에 관리자들은 안전 개선을 위해 활동 중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림. 때로는 수집된 내용을 토대로 노동자들에게 지적하며 작업 개선을 요구. 노조에서 관련 자료 요청했으나, 사측에서 거부함.
② 현대케피코: 사측은 2024년부터 공지를 통해 행동 기반 안전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도입 과정은 철저히 노조 협의 없이 진행됨. 행동 기반 안전의 기본적 실행방식을 따르되, 안전수칙 위반 시 개인별, 팀별 보상 및 처벌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음. 노조에서는 관련 자료와 진행 경과를 공개하라는 요구했으나, 어떠한 자료도 받지 못함. 사측은 노조를 포함해 구성원들에게 철저히 은폐하면서 배타적으로 행동 기반 안전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음.
③ 대구메트로환경: 올해 상반기부터 ○○산업안전협회의 컨설팅을 받으면서 행동 기반 안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앞서 사례와 마찬가지로 노조와는 어떠한 논의도 없었음. 노조에서는 실시 경과를 담은 자료를 요청했으나, 사측에서는 민감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묵살. 현대케피코와 유사하게 산재가 발생하면 개인별 성과급에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징계를 하며, 성과급 차등은 관리소별로도 적용.
④ 새롬전기: 고용노동부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우수사례로 선정된 사업장으로서 건설 분야 사업체임. 이곳은 이동형 CCTV, 액션캠으로 작업자들의 개별 행동을 관리자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지적함. 또한 행동 관찰 관리대장을 기록하면서 개별 작업자들의 문제 행동을 관찰하고, 즉각적으로 지적하고, 교육을 실시하기도 함.
행동 기반 안전 관리 프로그램의 문제점
① 안전 시스템 개선의 지체와 위험 상존
- 행동 기반 안전 관리는 아무리 잘 포장한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을 산재 주된 원인으로 간주하기에, 실제 산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조직적 요인들은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게 됨.
- 산재가 발생하기까지는 경영 및 안전 정책, 노무관리, 인력 보유 수준, 조직 문화, 물리 환경(시설·기계), 화학·생물학적 요인, 작업 공정, 작업 속도, 교육·훈련, 작업 절차 및 방법, 피로도 관리, 작업 관행, 작업 장비, 개인보호장구 등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행동 기반 안전은 가장 표면적 원인인 개인 행동에만 치중.
- 행동 기반 안전 프로그램은 위험 통제 방식에서 가장 효과가 높은 위험 요인의 제거, 대체, 공학적 통제 등보다는 개별 노동자 차원에서의 개인보호장비 착용, 작업 수칙 준수 등에 집중함. 그 결과 위험 자체를 없애거나 경감시키는 시스템적 개선은 도외시한 채, 노동자가 알아서 잘 위험을 회피하며 일하라고 요구.
- 위험 통제 순위에서 가장 비효과적 방식으로 관리한다면 위험은 상존하면서 노동자의 안전 보건을 위협하게 됨.
② 산재를 개인의 책임으로 여기는 인식 확산
- 행동 기반 안전 관리 프로그램은 산재의 원인과 책임을 개인한테 떠넘기는 체계임. 이러한 관리 방식이 고착된 일터에서 노동자들은 다치거나 아파도 그것을 조직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자신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로 인식. 행동 기반 안전 문화가 형성된 산재 문제를 개인화시키는 조직에서는 되려 문제 제기가 터부시됨.
③ 인센티브-징계 제도 연동을 통한 안전보건 문제 은폐의 가능성
- 행동 기반 안전 관리에서는 행동 관찰을 통해 긍정적 안전 행동을 많이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불안전 행동이 많이 적발된 노동자는 징계하는 것이 기본 관리 구조. 2곳 사업장 사례처럼 안전 수칙 위반은 개인 평가, 부서 평가로 이어짐. 자신들 부상이나 질병 때문에 부서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동료의 성과급 산정 등에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면 노동자는 산재 보고에 주저할 수밖에 없음. 안전보건 문제가 은폐될 가능성이 커짐.
④ 경영진에게는 면죄부, 노동자들은 상호 감시, 경쟁 속에서 노조 결속 약화
- 행동 기반 안전 프로그램은 안전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경영진은 잘못된 안전 정책과 불안전한 시설 및 기계 개량 소홀 등에 있어서 면죄부를 얻게 함. 나아가 노동자들은 서로 감시하거나, 감시받는 대상이 되기에 지속적인 긴장 상태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피로도와 스트레스는 높아질 수밖에 없음. 서구 노조의 경험에 따르면, 불안전 행위를 한 노동자를 비난하는 현장 문화의 변화 속에 노조 결속력은 약화되며, 기존 안전보건 구조(안전보건 대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를 무력화시키기도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