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의사인력의 증원은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 담보위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2027년도 이후 의대 입학정원을 결정하기 위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현재까지 매주 개최되고 있다. 2024년 윤석열의 일방적인 증원 발표 이후 집단행동으로 중단된 의사인력 증원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판단한다. 다만, 현재 진행중인 논의에 있어 의료를 이용하는 노동자와 시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이에 민주노총은 1,60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의사인력 증원을 논의하는 보정심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는 바이다.
먼저, 민주노총은 의료수급추계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며 보정심 논의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구성이 공급자인 의료계에 치중되었다는 점은 향후 보완해야할 지점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15인의 위원 중 8인을 의료계에서 추천하는 것은 사실상 공급자인 의료계가 모든 결정권을 독점하는 것으로 비정상적 구조이다. 의료를 이용하는 절대다수인 노동자와 시민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는 구조로 향후 개편해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20일 4차 보정심에서 2037년 의사인력 부족 규모에 대한 모형을 12가지에서 6가지로 압축했다. 논의의 속도를 위해 선택지를 축소하는 것은 필요하나, 정부가 제시한 모형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당초 수급추계위원회의 결정보다 감소한 규모를 제시한 상황에서 추가로 6가지 모형을 제시해 공급부족 규모를 더 축소시켰다. 이미 기본 추계에도 인구구조 변화, AI 등 기술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 근무시간 단축, 의료이용 통제 등과 같은 요인이 반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해당 요인들을 별도로 추가보정하여 더 축소된 규모를 제시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수요자와 전문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의견으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의대 입학정원의 규모는 2,530명에서 4,800명 사이에서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수급추계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2037년 의사인력 부족규모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AI 등 기술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근무시간 단축, 인구구조 변화 등이 수요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설정하고, 이를 근거로 의사인력 부족 규모가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당 요인들이 오히려 의료이용의 수요를 증가시키고, 의사인력의 증원이 필요한 요인으로 판단된다.
AI와 같은 기술발전은 의사의 핵심업무인 진료보다는 서류작성 및 사진판독과 같은 비임상적 업무를 감소시킨다. 이는 OECD가 세계의사회와 공동으로 조사․발표한 2024년 보고서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반복적 행정 업무 자동화, 진단 보조, 데이터 분석 등으로 의료진 부담을 줄이고, 환자 진료에 더 집중하도록 지원”한다며, 의료계는 “AI가 의사를 대체하기 보다는 보조하며, 새로운 직무와 역할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의사인력의 감축을 전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AI의 보조로 치료 결정, 수술, 환자와의 소통을 해야하는 의사의 업무량이 증가해 인력의 증원이 필요하게 된다.
AI 등 기술발전은 진단 비용과 시간을 낮춰 시간이나 경제적 이유로 의료를 이용하지 않았던 잠재적 환자의 이용을 높이게 될 것이다. 예시로 AI기술로 영상 판독이나 진단이 저렴하고 빨라지면 더 많은 환자가 검사를 받게 되고 이는 전체 의료이용 총량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비용의 감소가 수요를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지 않았던 욕구를 폭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의료는 정보 비대칭성으로 의사가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구조다. AI는 의사가 더 많은 의료행위를 권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AI가 찾아낸 우연한 발견은 추가적인 확진 검사, 조직 검사, 추적 관찰, 치료로 이어지는 의료 이용의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이는 의사의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의료 수요를 증가시킨다. “만들어진 병상은 채워진다”는 로머의 법칙처럼 AI로 인해 늘어난 진단 역량은 그 자체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I로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게 되면, 의사는 자신의 소득보전이던 환자의 건강 증진을 위해서던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수요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즉, AI 등 기술발전이 의료 효율을 높여 의료이용의 총량을 확대하고, 그 수요는 의사에게 집중될 것이다. 따라서 AI 등 기술발전은 의사인력 감축의 근거가 아니라 의사인력을 증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노동시간 단축 역시 의사인력을 증원해야 할 이유이다. 의사의 근무시간 단축은 산술적인 이유만으로도 기존의 의료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의사인력 증원을 수반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의사에 대한 근무시간 규정을 항공산업과 동일하게 적용할 경우 기존 인력의 71%를 증가시켜야 하며, 전공의의 경우 174%를 충원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유럽의 경우 ‘유럽 근무시간 지침’에 따라 의사의 주당 근무시간을 최대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을 의무화했다. 그 결과 환자의 안전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음에도, 인력 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의사 증원과 간호사 등 타 직역으로 업무를 이관하기까지 하였다. 독일은 인구 1,000명당 의사수가 4.3명임에도 불구하고 주당 근무시간 단축으로 의사 수급에 대한 압박이 이뤄지고 있으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근무시간의 단축은 근무교대 횟수를 증가시켜 환자 정보를 인계하는 시간을 증가시키거나, 24시간 진료를 유지하기 위한 추가 인력이 필요하게 된다. 즉, 의사의 노동시간 단축은 의사인력의 충원이 함께 이뤄져야만 현재의 의료이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4.5일제 등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이 단축됨에 따른 의료이용 증가도 이뤄진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제공해 과거 시간의 부족으로 미뤘던 의료 이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국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장시간노동은 병원 방문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미충족 의료를 발생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장시간노동을 하는 집단이 시간 부족으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의료 접근을 위한 시간이 확보되어 수요 증가로 어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노동시간 단축은 의사에 있어서도, 노동자와 사회구성원 전체를 고려함에 있어서도 의사인력을 증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인구구조 변화이다. 한국은 유래없는 속도로 고령화사회,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는 의사의 수요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핵심적 요인이다. 단순히 노인인구의 증가가 아니라 의료서비스 이용의 패턴을 변화시킨다. 고령층은 단일 질환이 아닌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는 경우가 많다.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약 84%가 최소 하나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환자는 더 잦은 진료와 복잡한 투약관리, 여러 전문 분야의 협진이 필요해 환자 1인당 투입되어야 할 의료양이 급증한다.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고령인구의 증가는 의료 수요의 증가, 환자 1인당 투입되어야 할 의사의 노동시간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의사증원이 필요하다.
저출생에 따른 인구감소가 의사인력 감소의 요인이라는 주장 역시 주요 선진국의 인구 패턴을 간과한 것이다. 다수의 인구학 연구에 따르면 국가의 발전 수준을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HDI)rk 0.85~0.9 이상의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하락하던 출산율이 다시 반등하는 J자 패턴이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한국의 HDI는 2024년 발표 기준 0.929로 세계 19위인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를 고려할 때 합계출산율이 반등될 가능성이 있으며, 2024년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십년간 추진한 저출산 대책 등의 영향과 장기적인 시계열로 변화하는 인구구조를 현재의 낮은 출산율을 근거로 의사수를 결정할 경우 향후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추가로 의사인력의 고령화도 함께 고려한다면 현재 의사인력의 증원은 당면한 과제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의사인력의 증원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할 과제이다. 이번 의사인력 양성규모를 결정함에 있어 최우선 원칙으로 지역의료 격차, 필수․공공의료 인력 부족 상황 해소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2027년부터 향후 5년간 최대한 많은 인원으로 증원해야만 해소가 가능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의료시스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2026.1.2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