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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을 민간자산운용사에 이전하려는 정부 시도의 문제점

작성일 2026.02.24 작성자 대변인 조회수 16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보도자료

2026224()

홍석환 정책국장 010-9036-4393

() 04518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 경향신문사 14| 대표전화 (02)2670-9100 | FAX (02)2635-1134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을

민간자산운용사에 이전하려는 정부 시도의 문제점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24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안건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민간자산운용사에 위임하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시도가 가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공적기구의 역할을 방기하는 조치로 판단한다. 이는 국민연금이 행사해야 할 주주권을 민영화하는 것이며,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견제 권력을 재벌과 대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헌납하는 조치로 국민연금의 가입자 대표로서 절대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히는 바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운용규모는 266.2조원으로 이 중 134.1조원(50.4%)이 민간자산운용사에 위탁 운용 중이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자산의 운용에 대한 권한만을 민간운용사에 맡길 뿐 핵심적인 주주권 행사 권한은 국민연금에 귀속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하려는 내용은 이러한 구조를 뿌리채 뒤흔든다. 정부는 투자일임 방식에서 단독펀드 방식으로 개악하려 하는데 이 방식이 도입되면 주식의 명의 자체가 위탁운용사로 이전되어 투자 기업의 배당 결의, 임원 선임, 정관 변경, 합병 및 분할과 같은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관한 결정을 모두 위탁운용사의 독자적인 권한으로 귀속된다.

이러한 구조는 국민연금의 관리 편의성 및 수익률 방어 측면에서 비효율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자금을 이동시킬 때마다 주식 매도가 이뤄져 시장 충격을 유발시킨다. 또한 134.1조원에 달하는 자산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해 리스크관리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 주장의 허구성

정부는 수탁자책임 활동이 국민연금 명의로 이뤄져 관치금융의 논란이 야기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에 대해 자본과 경영계가 끊임없이 제기해 온 거짓 문제제기에 굴복하는 것이다. 한국 재벌과 대기업은 총수일가가 보유한 1~2%에 불과한 지분만으로 순환출자, 지주회사 구조를 악용해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다. 심지어 이사회와 사외이사는 총수의 거수기로 전락한지 오래이며, 소액주주는 이들의 전횡을 통제할 어떠한 수단도 보유하고 있지 않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민연금의 거대한 자본력은 재벌과 대기업을 상대로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권력이다. 따라서 정부가 자본과 경영계의 낙인찍기에 굴복하는 것은 경찰이 도둑의 불만을 수용해 스스로의 무기를 버리는 행위와 같다.

정부는 또 다른 이유로 국제투자분쟁(ISDS)을 내세우고 있다. 20236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정하며 국민연금이 사실상 국가기관이고 그 행위는 한국정부에 귀속된다고 명시한 것을 이유로 ISDS의 위험으로 회피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엘리엇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민연금이 정상적인 수탁자 책임활동을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박근혜정부의 청와대와 복지부가 삼성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조력하기 위해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외압을 행사하고 합병 찬성을 강행토록 한 정경유착과 범죄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 불법적인 행위의 결과물을 근거로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할 주주권을 약화시키고 민영화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법제도적 여건상의 제약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현재 1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30여개에 달하며 초대형 기금의 특성상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해 경영참여 목적의 대화나 주주제안을 할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른 지분공시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전략이나 비공개 대화 내용이 시장에 노출되어 단계적 관여(비공개 대화공개서한주주제안)가 어렵고 5% 룰 위반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 경영참여 선언 후 6개월 이내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도해 얻은 이익은 전액 반환해야 하는 족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국민연금기금의 스튜어드십 활동을 축소시켜야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책은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목적으로 하는 공적연기금의 정당한 주주활동에 대해서는 대량보유공시 의무를 유연하게 완화하거나 적대적 M&A 목적이 아닌 주주활동에 대해서는 단기매매차익 반환 의무를 예외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국가의 입법권과 행정규칙 제정권을 지닌 정부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나 법개정 노력은 방기하고 국민연금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또한 이를 이유로 권한을 축소한다면 민간기금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등 악화된 시장환경만을 조성할 뿐이다. 정작 중요한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강화라는 본래의 목적을 주주권 약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주주권 민영화의 위험

주주권을 이전받는 민간자산운용사는 태생적으로 독립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대다수 자산운용사들의 지배구조와 영업 기반은 재벌과 대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 한국투자신탁 등 주요 운용사의 상당수가 재벌의 계열사이거나 거대 금융지주회사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 결정적인 한계는 이들의 수익 구조이다. 자산운용사들은 국민연금의 위탁자금을 유치하는 것 외에도 수백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의 퇴직연금 등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 영업을 하고 있다. 삼성, 현대차, LG 등 주요 그룹의 퇴직연금 시장은 자산운용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수익원이며 계열사의 상장 주관, 회사채 인수 등 수많은 B2B 금융거래 계약이 재벌 및 대기업의 의사결정에 좌우된다. 이런 이유로 과거 보수 정부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자산운용사에 넘기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에서 확인되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추진된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전문위원회의 심의마저 배제한 채 불공정한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ISS를 비롯해 기업지배구조원(KCGS) 등 국내외 모든 자문기관에서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산정되었으니 반대를 강하게 권고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부의 외압으로 찬성을 던진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국내 민간자산운용사의 95%가 삼성의 합병안에 찬성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가치 평가, 수익자의 이익 보호(수탁자 책임)이라는 금융업의 기본적인 의무와 철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이러한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관계속에서 위탁운용사가 자신들의 최대 고객이자 잠재적 전주인 이들의 이해관계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정 자산운용사가 국민연금의 위탁자금 의결권을 활용해 대기업 총수를 횡령 등을 이유로 이사연임 반대 투표를 하거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한다면 당장 다음날 자금회수나 거래중단이 이뤄질 것이다. 즉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들은 지배구조상 대다수 재벌 계열사이며, 거래 계약 관행상 재벌과 기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기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민간자산운용사에 위임하는 것은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형성된 공적인 지분을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 재벌과 대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우호지분 내지는 백기사로 강제 동원하겠다는 것으로 자본에 대한 일방적 지지를 선언하는 것이다.

 

ESG 감시 기능의 상실

정부는 주주권 이전을 책임투자형 펀드부터 우선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책임투자형 펀드는 ESG 요소를 벤치마크해 우수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은 이 펀드의 최근 5년간의 수익률(202510월 기준 전체 위탁 77.14% 대비 책임투자형 87.00%)이 벤치마크나 전체 위탁 자산 대비 높다고 주장한다.

표면적인 재무적 지표를 보면 책임투자가 매우 성공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기만이다. 위탁운용사가 운용하는 책임투자형 편드는 투자를 개시하는 의사결정 단계에서만 ESG요소를 기계적으로 고려해 주식을 매수할 뿐이다. 투자 이후에는 피투자기업 내부에서 횡령, 배임. 산업안전 위반, 부당노동행위, 중대재해 사망사고 등 심각한 ESG 훼손이 발생해도 이에 개입하고 관여하는 적극적 주주활동은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반쪽짜리 식물펀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탁자 책임활동이 민간자산운용사로 이뤄질 경우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 자체가 사라진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는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제반 여건 부족, 기업과의 대화 절차 준수 등을 핑계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주주권이 민간자산운용사로 이전된다면 문제 기업의 경영진에 최고의 선물이자 면죄부를 부여하게 된다. 단기적인 재무적 벤치마크 수익률만을 추종하며 펀드를 운용하고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하는 운용사가 중대재해처벌법이나 ESGS 지표를 근거로 반대하거나 사외이사 파견을 요구하는 등 모험을 할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 노후자본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의 배만 불리는 맹목적인 투자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무력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의 주총 안건 반대 비율은 과거 10%대에서 2025년 기준 약 23.3%로 두배가량 상승하며 주주행동이 활발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철율과 파급력을 확인하면 상황은 다르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800여건의 주총 안건 중 실제 부결을 이끌어낸 안건은 고작 10건 내외로 부결 성공률이 1%에 불과하다. 이는 기관투자자간의 적극적인 공조, 5%룰 위반을 우려한 소극적인 비공개대화 고수,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등 적극적 주주행동을 기피하는 정부와 국민연금의 안일한 태도에 기인한다.

지금처럼 266.2조원이라는 막대한 규모의 주식시장의 영향력을 가진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해도 관철율이 1%에 불과한데 이른바 민간자산운용사에 조각내어 위임한다면 어떻게 될지 너무도 자명하다. 위탁운용사간에 찬반 의견이 엇갈리거나 책임 회피를 위해 기권표를 남발할 경우 국민연금의 의결권 지분은 더욱 산산조각난다. 결국 재벌과 대기업의 총수가 상정한 안건은 의미있는 저항이나 방해없이 손쉽게 가결될 것이며, 이는 사실상의 스튜어스십 코드가 무력화되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도 자산운용사들이 도외시하고 회피하였던 수탁자 책임을 주주권을 위임 받는다고 이를 수행할리 만무하다. 오히려 족쇄를 벗어나 그들의 목적에 맞도록 기금을 이용할 수 있는 무기를 넘겨주는 것이다.

 

가입자 중심의 강력한 수탁자 책임활동으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의 시도는 국민연금이라는 국민들의 노후 자산을 재벌과 대기업의 하청구조로 강제 편입시키는 악의적인 제도 개악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개악이 아니라 가입자 중심의 강력한 수탁자 책임활동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의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첫째, 위탁 운용된 주식이라도 그 명의와 의결권은 국민연금에 귀속되어야 한다. 나아가 기금운용본부 내 수탁자 책임 전문인력 확충, 1%에 불과한 주총안건 부결율을 높이기 위한 기관투자자간의 공조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및 적극적인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등이 규정화 될 필요가 있다.

둘째, 20233월 개악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운영규정을 폐기하고, 위원 구성의 전원을 가입자단체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

셋째,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맞거나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경영진, 대량해고 등을 일삼는 기업에 대해 허울뿐인 기업과의 대화 단계를 생략하고 즉각적인 이사 연임 반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공익적 사외이사 파견 주주제안, 주주대표소송 등 경영참여 목적의 강력한 제재권한을 기본 의무사항으로 법제화해야 한다.

넷째, 5% 대량보유보고제도 및 단기매매차익 반환 의무를 핑계로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를 통해 공적연기금의 정당한 지배구조 개선 목적의 주주활동에 대해 공시의무 유예 및 반환의무 예외를 인정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또한 독립적인 스튜어드십 이행을 감독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민간 기관투자자와의 합법적인 공조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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