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공공의료 확충 없는 ‘기술 만능주의’와 ‘재배치 정책’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는 7월 2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추진전략」과 「AI 기본의료 전략」을 발표하며, “어디 살든 제대로 치료받는 모두의 의료보장”을 약속했다. 민주노총은 지역과 공공의료 공백 해소라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나, 이번 대책이 과연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또 하나의 기술 만능주의와 재정 치장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정부는 스스로 한국의 공공병원 비중이 5.2%로 OECD 평균인 56.5%에 크게 못미치며, 공공병상 비중도 9.4%로 OECD 평균 71.5%에 한참 뒤쳐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절대적 격차를 메우기 위한 계획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내놓으 것은 기존 지역거점공공병원 41개소에 대한 기능보강뿐이며, 오히려 재정 지원의 무게중심은 포괄2차 종합병원 등 민간병원 확대(175개에서 195개, 지원액 7천억원에서 9천억원으로)에 있다. 공공병원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은 실종된 채 “공공의료 강화”라는 이름으로 민간 의료자본에 건강보험 재정을 더 투입하는 것이 정부 대책의 실체다.
지방의료원 35개 중 30개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현실 앞에서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진료량 비례 보상”에서 “성과․질 중심 보상, 총액 보상으로 전환”이다. 이는 공공병원 운영을 경쟁과 성과 논리로 재편하겠다는 접근이다. 공공병원은 성과가 아니라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지역과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역의사제(5년간 2,492명), 국립의학전문대학원(연 100명) 등을 중장기 대책으로 내놓았지만, 이는 최소 2033년 이후에나 현장에서 배출되는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정작 당장 시행하겠다는 대책은 순환 당직, 파트타임 채용․근무, 의료인력 파견 등 기존 인력의 노동을 쪼개고 유연화하는 방식뿐이다. 이는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인력에게 더 많은 근무지, 더 불안정한 형태의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필수의료 공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정공법 대신 인력 돌려막기로 문제를 봉합하려 하고 있다.
「AI 기본의료 전략」은 공공의료 AI 고속도로, 응급 통합 AI 플랫폼 등 인프라 구축에는 GPU 800장 규모의 구체적 투자 계획을 제시하면서도, 정작 AI 도입에 따른 의료노동자의 업무 재설계, 책임 소재,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AI 기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적정 보상체계를 폭넓게 검토”한다는 추상적 언급에 그친다. AI가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인력 감축의 근거로 활용되지 않을지, AI 오류의 책임이 의료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지 않을지에 대한 안전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의식 소실 등 의사결정이 어려운 응급환자의 경우 환자 동의 없이도 의료진이 개인 건강기록을 열람하도록 허용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 아울러 가명 데이터에 대한 기관윤리심의 면제 검토는 국민의 건강정보를 민간 AI기업의 학습 데이터로 손 쉽게 제공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국가 보건의료데이터 허브 구축이 국민 건강권 증진이 아닌 의료 AI 산업 진흥과 시장 창출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의료사고 국가보상금을 3천만원에서 3억원으로 확대한 것은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동시에 추진되는 반의사불벌 대상 확대, 고위험 필수의료사고에 대한 형 감면 및 기소제한, 심의기간 중 의료인 소환 자제 등의 조치는 의료사고 피해자의 신속한 진상규명과 권리 구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의료인의 정당한 진료 여건 보장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환자와 피해자의 알권리와 법적 구제 절차를 후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의료는 산업이 아닌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공공재이다. 정부는 경제 논리가 아닌 공공의료 확충과 노동자․시민․환자의 권리 보장이라는 원칙 위에서 정책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아래의 요구를 반영한 대책을 재수립할 것을 촉구하며, 진정한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투쟁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 공공병원․공공병상 확충의 구체적 목표치와 로드맵을 수립하라.
-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인건강정보의 상업적 개방을 즉각 중단하라.
- 디지털헬스케어법 등 국민 건강정보를 산업 자원화하는 입법 시도를 중단하라.
- 인력기준을 법제화하고 정규 인력을 확충하라.
-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건강보험 재정 투입에 공공의료기관 우선 원칙을 명문화하라.
-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로드맵을 제시하라.
2026. 7. 22.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