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한 대법원판결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대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지웠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사법 정의를 훼손한 대법원 1부와 주심 천대엽 대법관을 강력히 규탄한다.
오늘 대법원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상고심에서 검찰과 피고인 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 판결로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참사 책임자 박순관에게 징역 4년 형이 확정됐다.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는 징역 7년, 아리셀 법인에는 벌금 8억 원이 확정됐다.
오늘 대법원의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우리 사회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기업이 이윤을 위해 사람을 죽여도 우리 사회는 그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법은 조문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해석되고 집행되는 과정에서 실질적 효력과 의미를 갖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을 처벌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대법원이 그 법의 취지를 좁게 해석하고 책임의 무게를 크게 낮춘 판결을 그대로 확정함으로써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는 사고 이후의 배상과 합의가 사고 이전의 예방 투자보다 싸게 먹히는 구조를 바꾸고,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실질적으로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비용으로 계산하고, 사고가 난 뒤 합의와 배상으로 책임을 줄이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법이었다.
그 때문에 이번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대법원판결이 중요했다. 아리셀 참사에 대한 2심 판결은 ‘비용을 안전보다 우위에 놓아 안전사고를 일으켜도 합의와 보상으로 형량을 감형받을 수 있다’라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취지를 정면에서 반박하는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법 정의를 수호하는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과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갖는 의미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 대법원은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참사에 내려진 징역 4년의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오늘 판결이 남길 영향이 엄중하다. 대법원의 판단은 앞으로 각급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해석하고 형을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23명이 숨진 참사에도 경영 책임자에게 징역 4년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반복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과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강제하고 중대재해를 예방하려 했던 취지는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 필요한 것은 “사고가 나더라도 합의하면 된다”라는 신호가 아니라 “안전과 생명을 외면하면 기업과 경영 책임자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분명한 경고다. 오늘 대법원의 판결이 안전 투자보다 사고 이후의 합의와 감형을 선택해도 된다는 잘못된 사법적 신호로 남는다면, 그 책임에서 대법원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판결과 법 해석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보다 기업의 비용을 우선하는 구조를 바꾸고,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 책임자에게 마땅한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2026.10.20.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