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이어지는 세계 민중의 투쟁과 연대!
바로 지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엔진을 멈춰라!!"
여러분들은 지난 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시애틀 투쟁을 기억하실겁니다. 이 투쟁은 언론에 의해 '폭동'으로 매도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5만여명의 시민·민중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WTO체제에 대한 반대였으며,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투쟁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 다보스, 미국 워싱턴, 호주 멜버른 그리고 체코 프라하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서울에 모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생존권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전세계 민중의 분노는 이제 1997년 외환·금융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이곳 동아시아,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전세계 민중들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을 지지하며, 또한 계승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투쟁하고 있는 전세계 민중들과 손을 잡으려 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생태계, 문화적·성적 다양성, 인권 등 세계 민중들이 수세기에 걸친 투쟁 속에서 쟁취한 성과물들을 하나 둘씩 파괴하고 있습니다. 초국적자본의 이윤만을 위해 노동자들의 생존을 파괴하고, 제3세계 국가를 파탄시키고 있습니다. 완전고용 정책은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아래 길거리에 내팽겨쳐지고 있습니다. 제3세계 국가들은 어떻습니까? 식민지시대 천연자원을 비롯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약탈당했던 제3세계 국가들은, 이제 외채의 덫에 빠져, 주권과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금융위기'의 광풍이 제3세계 경제발전 모델로 칭송받던 동아시아를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IMF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그랬듯이, 여지없이 동아시아 민중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IMF 처방이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것의 결과는 처참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IMF와 동아시아 각국 정부들이 추진한 구조조정 정책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제2·제3의 외환·금융위기는 이제 항상 우리 곁에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주식·금융시장은 초국적자본 및 기관투자자들의 '투기장'으로 변해버린지 오래며,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이곳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IMF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한국 경제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IMF 구조조정이 시행된 지난 3년동안, 초국적자본은 국내 주식시장의 30% 이상을 장악하며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계층간 소득격차는 통계 집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 양극화는 심각해져있습니다. 민중들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던 공기업들은 '세금 도둑'으로 몰려, 국내외독점자본에게 매각되고 있습니다. 급증한 실업자들은 생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고,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엄청나게 늘어난 노동강도로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이것도 모자라 초국적 자본에게 착취의 자유를 무한정 보장해주며, 민족경제의 대외 종속을 심화시키고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를 초래할 한미/한일 투자협정을 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WTO 수입개방으로 이미 휘청거리고 있는 농업에 또다른 위기를 가중시킬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또한 체결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 민중들은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은 초국적자본의 경제적·정치적 지배력을 무한대로 강화시켜주고, 반면 민중들의 삶과 생태계는 시장과 이윤의 논리아래 짓밟힐 것이라 단언합니다. 실제 한일투자협정 과정에서 제기된 '진지조항'은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진지조항'은 노동자들의 기본권으로서 파업 및 쟁의권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에 다름아닙니다. 또한 미국에 요구한 '스크린쿼터제' 철폐는 문화적 다양성과 사회적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투자협정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 민중을 포함 아시아 민중, 나아가 전세계 민중들은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IMF와 각국 정부에 의해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결코 경제 위기 극복의 처방책이 아니며, 오히려 국민경제와 사회·민중적 권리를 제국주의와 초국적자본의 손 아래 팔아넘기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아셈에 대해서 조차도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셈은 제1차 태국 방콕 정상회의에서부터 전개된 아시아·유럽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의 노력, 즉 노동·여성·환경 등 민중적·민주주의적 기본권을 포괄적으로 담은 '민중의 비전'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적 의사수렴 구조의 창설 제안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번 제3차 아셈정상회의에서 다뤄질 의제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강화하는 프로그램들로 가득차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유럽집행위원회는 자본이동에 대한 장벽을 철폐하기 위한 자유화 조치들로서 외환통제 철폐, 과실송금의 자유화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또한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는 민영화와 외국인부동산소유에 대한 규제철폐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투자환경 개선을 위해 기업들에게 낮은 세금을 부과하고, 파업이 없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WTO와 IMF가 강요한 구조조정, 그리고 한미·한일투자협정 등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이번 서울 정상회담에서 양 지역 정부들은 WTO 뉴라운드의 조기출범을 위한 논의가 공식의제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셈이 WTO라는 자유무역체제의 강화를 위해 복무하고 있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아셈이 또 다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기구로 변질되고 있습을 목도합니다. 아셈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하려 한다는 데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동지여러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민중들의 투쟁은 지칠줄 모른 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멕시코에서부터, 브라질, 태국, 인도네시아,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저항의 몸짓은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2단계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막아내려는 노동자들, 스크린쿼터를 사수하고 문화다양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영화인들의 투쟁, 수입개방으로 애써 가꾼 수박, 마늘, 가지 등을 불 속에 내던져야 하는 농민들의 분노,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건 투쟁… 그리고 국제회의때마다 '싹쓸이' 당해서 생존의 토대 자체를 파괴당하고 있는 빈민들의 목숨을 건 투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한국 민중들의 의지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투쟁은 한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하루동안의 공동행동'이 의미있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대중투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한국 민중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에 전세계 민중들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는 한국 정부에 의해 협상이 진행중인 한미·한일 투자협정 및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으로 이어나갈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코 '불가피한 대세'가 아니며,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초국적자본이 제3세계와 노동자·민중의 삶을 파괴하면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프로젝트임을 다시 확번 확인하고자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슬러, 다른 세계를 향한 세계 민중의 열망이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2000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