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2001.3.27 성명서 >
<한겨레> e경제시평 김기원 교수 '대우차 부활을 위하여'를 읽고
1. 방송대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기원 교수가 오늘 3월27일자 한겨레 신문에 쓴 '대우차 부활을 위하여'를 읽고 당혹감과 함께 분노를 참을 수 없다.
2. 김교수는 이 글에서 대우차 문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정권퇴진 투쟁으로 원상회복시킬 사안이 아니고, 김우중씨를 체포한 들 채권단 좋은 일만 시키니 부질없는 일 말고 구조개혁과 고용조정에 동의하라느니, 상급 노조단체들이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고, 정부나 채권단도 회생에 관심 없으니 내부가 뭉쳐야 살고 이를 위해 노사갈등을 하지 마라느니, 갈 길이 태산이니 무릎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하는 민주화 투쟁 때 같은 일 하지 말고 해외매각이든 독자생존이든 찬밥 더운 밥 따지지 말고 밥값 마련하는 구조개혁에 나서라고 노조와 민주노총의 투쟁을 매도하며 비웃고 있다.
3. 김교수 글은 과정과 원인이야 어쨌든 결과만 보고 경제문제로만 대우차를 따지는 '결과론'과 '경제논리'로 가득 차 있다. 김교수가 그 동안 재벌해체를 외치면서 기대었던 경제정의의 가치는 간 곳이 없고, 정권퇴진 투쟁과 김우중 체포 활동의 원인이 되었던 문제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 등 상급단체의 투쟁을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기고 억지만 부리면 다 될 듯이 무책임하게 지도하는 일'로 매도하고 나선 데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4. 지난 3월15일 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은 <한겨레>에 인권운동가의 눈으로 본 '2001년 부평과 인권운동'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경제논리'가 아닌 '사람 사는 문제'로 대우차 사태를 보여준 MBC 스페셜 '1750명의 해고통보서'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면 경제논리로만 사태를 진단하고 재단해서 '자신의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 힘없는 노동자들의 몸부림을 '부질없는 억지와 투정, 알리바이 만들려는 투쟁'으로 매도해도 되는가. 이런 논리로 무장한 김 교수의 경제학은 과연 진정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인가.
5. 정경유착과 천민재벌경영이 남긴 오늘의 대우자동차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찾고 처리 과정에서 책임과 부담을 공평히 지우는 일, 다시는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나라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나 사회정의를 위해서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를 모르지 않을 김기원 교수가 왜 이런 글을 <한겨레>에 보냈고, 아무리 외부원고라 하더라도 <한겨레>는 정당한 의견 이라기 보다는 천박한 비아냥으로 가득 찬 글을 막 실어도 되는지 의아스럽다. 재벌과 정권이 망해먹은 공장에서 기업을 부도낸 범죄자란 누명을 쓴 채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가 함께 쫓겨나고 남편의 정리해고를 항의하다 경찰에 밀려 부인이 유산 당하는 '2001년 부평'… 무관심을 넘어 등 뒤에서 비아냥 섞어 꽂는 비수에 노동자는 더 아프다.<끝>
<참조> 한겨레 2001.3.27 23면
[경제시평] 대우자동차 부활을 위하여
대우자동차는 절망공장이다. 가동률이 부도 이후 더욱 떨어져 부평공장의 경우 30%를 밑돌고 있고, 제너럴모터스(GM)로의 매각 전망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이런 가운데 수천 명의 전경이 공장에 진을 쳐서 군사정권 때의 암울했던 대학캠퍼스를 방불케 한다. 반면에 정리해고당한 근로자 중 일부는 성당에서, 일부는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세세한 묘수풀이는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여기서는 기본원칙을 점검해 보자.
첫째로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우차는 망한 회사이고 워크아웃 이후 금융권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해 왔다. 이런 회사가 살아나려면 다른 회사에 못지 않게 좋은 품질의 차를 싸게 만들어서 수익을 남기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구조개혁을 해야 하고 고용조정도 불가피한 일환이었던 셈이다. 물론 무급순환휴직 등 보다 원만한 해결책을 무시해버린 정부·채권단·경영진에게 문제는 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권퇴진 투쟁으로 원상회복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대차에서 보듯이 경영정상화를 통해서만 쫓겨난 종업원들이 다시 회사에 들어올 수 있다. 김우중씨도 당연히 체포해야 하지만 체포한들 대우차 경영에 별 도움이 안된다. 회계분식한 23조원은 주로 적자 은폐나 뇌물공여와 관련된 것이고, 그렇지 않고 빼돌린 돈이 있더라도 채권단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둘째로 대우차 내부가 뭉쳐야 산다. 대우차 외부사람들은 대우차 내부사람들 만큼 절실하지 않다. 현재 정부엔 대우차를 책임지고 챙기는 곳도 희미하고, 채권단은 대우차가 어찌됐든 돈을 회수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다. 상급 노조단체들도 대우차 투쟁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이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대우차에 삶 전체를 내맡기고 있는 경영진, 사무기술직, 생산직이 똘똘 뭉치지 않으면 싹수가 노랗다. 쌓인 옛 감정은 빨리 떨치고 머리와 가슴을 맞대야 한다.
원래 노사관계는 상호대립과 상호의존의 양면성을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주요 측면이 달라진다. 망했고 총수도 도망간 대우차와 같은 경우엔 상호의존의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관성에 젖어서 과거 식의 노사갈등을 계속해선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연봉 1달러로 크라이슬러 재건을 지휘한 아이아코카처럼 고통을 함께 하는 단합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아자동차 재생에도 기아차 내부 구성원의 주인의식과 단결이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잊지 말자. 깨진 쪽박으로는 동냥도 받을 수 없다.
셋째로 찬밥 더운밥 지나치게 가리지 말자. 해외매각보다 독자 발전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더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리하게 뻗대다간 쪽박마저 놓친다. 지상명제는 경영정상화이고 나머지는 다 수단이다. 따라서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는 것은 민주화 투쟁 때의 일이다. 시장과 싸움에선 뱀과 같은 지혜와 버들가지와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해외매각과 독자생존 어느 쪽을 모색하더라도 대우차에겐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다. 오늘의 상황을 초래한 부실한 리더십, 뒤떨어진 기술수준, 비생산적인 노사관계를 환골탈태시키지 않으면 빨리 죽든 천천히 죽든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공기업화도 국민 돈을 무작정 퍼붓는 식이라면 성사될 턱이 없다. 찬밥 더운밥 따지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밥값을 마련하는 일, 즉 피나는 구조개혁이다.
요컨대 냉철한 현실인식, 대동단결, 지혜와 유연성이 대우차 회생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이게 갖춰지도록 대우차 내부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애써야 한다. 외국자본 눈치 살피느라 노동자들에게 본때를 보이라고 경영진을 압박하는 정부·채권단이나,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기고 억지만 부리면 다 될 듯이 무책임하게 지도하는 노동계 일각은 대오각성해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대우차를 죽음의 전형이 아니라 부활의 모범으로 바꿔 보자.
김기원(방송대 교수, 경제학)
<한겨레> e경제시평 김기원 교수 '대우차 부활을 위하여'를 읽고
1. 방송대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기원 교수가 오늘 3월27일자 한겨레 신문에 쓴 '대우차 부활을 위하여'를 읽고 당혹감과 함께 분노를 참을 수 없다.
2. 김교수는 이 글에서 대우차 문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정권퇴진 투쟁으로 원상회복시킬 사안이 아니고, 김우중씨를 체포한 들 채권단 좋은 일만 시키니 부질없는 일 말고 구조개혁과 고용조정에 동의하라느니, 상급 노조단체들이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고, 정부나 채권단도 회생에 관심 없으니 내부가 뭉쳐야 살고 이를 위해 노사갈등을 하지 마라느니, 갈 길이 태산이니 무릎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하는 민주화 투쟁 때 같은 일 하지 말고 해외매각이든 독자생존이든 찬밥 더운 밥 따지지 말고 밥값 마련하는 구조개혁에 나서라고 노조와 민주노총의 투쟁을 매도하며 비웃고 있다.
3. 김교수 글은 과정과 원인이야 어쨌든 결과만 보고 경제문제로만 대우차를 따지는 '결과론'과 '경제논리'로 가득 차 있다. 김교수가 그 동안 재벌해체를 외치면서 기대었던 경제정의의 가치는 간 곳이 없고, 정권퇴진 투쟁과 김우중 체포 활동의 원인이 되었던 문제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 등 상급단체의 투쟁을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기고 억지만 부리면 다 될 듯이 무책임하게 지도하는 일'로 매도하고 나선 데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4. 지난 3월15일 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은 <한겨레>에 인권운동가의 눈으로 본 '2001년 부평과 인권운동'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경제논리'가 아닌 '사람 사는 문제'로 대우차 사태를 보여준 MBC 스페셜 '1750명의 해고통보서'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면 경제논리로만 사태를 진단하고 재단해서 '자신의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 힘없는 노동자들의 몸부림을 '부질없는 억지와 투정, 알리바이 만들려는 투쟁'으로 매도해도 되는가. 이런 논리로 무장한 김 교수의 경제학은 과연 진정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인가.
5. 정경유착과 천민재벌경영이 남긴 오늘의 대우자동차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찾고 처리 과정에서 책임과 부담을 공평히 지우는 일, 다시는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나라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나 사회정의를 위해서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를 모르지 않을 김기원 교수가 왜 이런 글을 <한겨레>에 보냈고, 아무리 외부원고라 하더라도 <한겨레>는 정당한 의견 이라기 보다는 천박한 비아냥으로 가득 찬 글을 막 실어도 되는지 의아스럽다. 재벌과 정권이 망해먹은 공장에서 기업을 부도낸 범죄자란 누명을 쓴 채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가 함께 쫓겨나고 남편의 정리해고를 항의하다 경찰에 밀려 부인이 유산 당하는 '2001년 부평'… 무관심을 넘어 등 뒤에서 비아냥 섞어 꽂는 비수에 노동자는 더 아프다.<끝>
<참조> 한겨레 2001.3.27 23면
[경제시평] 대우자동차 부활을 위하여
대우자동차는 절망공장이다. 가동률이 부도 이후 더욱 떨어져 부평공장의 경우 30%를 밑돌고 있고, 제너럴모터스(GM)로의 매각 전망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이런 가운데 수천 명의 전경이 공장에 진을 쳐서 군사정권 때의 암울했던 대학캠퍼스를 방불케 한다. 반면에 정리해고당한 근로자 중 일부는 성당에서, 일부는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세세한 묘수풀이는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여기서는 기본원칙을 점검해 보자.
첫째로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우차는 망한 회사이고 워크아웃 이후 금융권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해 왔다. 이런 회사가 살아나려면 다른 회사에 못지 않게 좋은 품질의 차를 싸게 만들어서 수익을 남기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구조개혁을 해야 하고 고용조정도 불가피한 일환이었던 셈이다. 물론 무급순환휴직 등 보다 원만한 해결책을 무시해버린 정부·채권단·경영진에게 문제는 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권퇴진 투쟁으로 원상회복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대차에서 보듯이 경영정상화를 통해서만 쫓겨난 종업원들이 다시 회사에 들어올 수 있다. 김우중씨도 당연히 체포해야 하지만 체포한들 대우차 경영에 별 도움이 안된다. 회계분식한 23조원은 주로 적자 은폐나 뇌물공여와 관련된 것이고, 그렇지 않고 빼돌린 돈이 있더라도 채권단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둘째로 대우차 내부가 뭉쳐야 산다. 대우차 외부사람들은 대우차 내부사람들 만큼 절실하지 않다. 현재 정부엔 대우차를 책임지고 챙기는 곳도 희미하고, 채권단은 대우차가 어찌됐든 돈을 회수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다. 상급 노조단체들도 대우차 투쟁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투쟁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이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대우차에 삶 전체를 내맡기고 있는 경영진, 사무기술직, 생산직이 똘똘 뭉치지 않으면 싹수가 노랗다. 쌓인 옛 감정은 빨리 떨치고 머리와 가슴을 맞대야 한다.
원래 노사관계는 상호대립과 상호의존의 양면성을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주요 측면이 달라진다. 망했고 총수도 도망간 대우차와 같은 경우엔 상호의존의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관성에 젖어서 과거 식의 노사갈등을 계속해선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연봉 1달러로 크라이슬러 재건을 지휘한 아이아코카처럼 고통을 함께 하는 단합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아자동차 재생에도 기아차 내부 구성원의 주인의식과 단결이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잊지 말자. 깨진 쪽박으로는 동냥도 받을 수 없다.
셋째로 찬밥 더운밥 지나치게 가리지 말자. 해외매각보다 독자 발전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더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리하게 뻗대다간 쪽박마저 놓친다. 지상명제는 경영정상화이고 나머지는 다 수단이다. 따라서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는 것은 민주화 투쟁 때의 일이다. 시장과 싸움에선 뱀과 같은 지혜와 버들가지와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해외매각과 독자생존 어느 쪽을 모색하더라도 대우차에겐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다. 오늘의 상황을 초래한 부실한 리더십, 뒤떨어진 기술수준, 비생산적인 노사관계를 환골탈태시키지 않으면 빨리 죽든 천천히 죽든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공기업화도 국민 돈을 무작정 퍼붓는 식이라면 성사될 턱이 없다. 찬밥 더운밥 따지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밥값을 마련하는 일, 즉 피나는 구조개혁이다.
요컨대 냉철한 현실인식, 대동단결, 지혜와 유연성이 대우차 회생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이게 갖춰지도록 대우차 내부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애써야 한다. 외국자본 눈치 살피느라 노동자들에게 본때를 보이라고 경영진을 압박하는 정부·채권단이나,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기고 억지만 부리면 다 될 듯이 무책임하게 지도하는 노동계 일각은 대오각성해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대우차를 죽음의 전형이 아니라 부활의 모범으로 바꿔 보자.
김기원(방송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