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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보도

[자료]단식중인 정의구현사제단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전문

작성일 2001.10.30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2563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단병호 위원장과 구속 노동자 석방을 촉구하며 연 시국기도회 관련 기사와 이날 시국기도회에서 발표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전문입니다. 이날 시국기도회에 앞서 열린 사제단 내부 회의에서는 정부가 아무런 수습에 나서지 않는 데 따른 대응책을 깊이 있게 논의했으며, 그 결과는 단식농성을 계속하는 가운데 적절한 시기에 맞게 실행해나가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겨레 2001년 10월 30일 화요일 기사 전문>

단병호위원장 석방촉구 시국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 20여명과 신자 등 300여명은 29일 오후 8시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산곡성당 옆 샤미나드 피정센터에서 '김대중 정권 회개 및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시국미사'를 열고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을 통해 "단위원장의 석방은 정부와 국민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며 "단위원장을 조건 없이 석방하고 대화상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성국(청주교구), 조정제(부산교구), 김진용(전주교구), 박기호(서울교구) 신부 4명은 피정센터 마당에 천막을 치고 김대중 정권의 도덕성 회복과 단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지난 23일부터 7일째 단식농성을 해오고 있다.
인천/김영환ywkim@hani.co.kr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

"일어나소서. 하느님의 옳으심을 밝히소서."
(시편74, 22)


김대중 대통령님,

우리들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의 공동대표 신부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우리들은 지금 전국에서 올라온 사제들과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하느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결의에 따라 공개적으로 대통령께 우리의 뜻을 전하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실망, 민중생존권!
지난 97년, 50년만의 정권 교체를 이룬 새로운 정부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의 정부'임을 자임하였습니다. 'IMF극복과 경제회복 그리고 인권국가건설'이라 대별되는 비젼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그렇게만 된다면' 하는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도록 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기대는 실망과 절망에 가까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실망스러운 일을 경제부문에서 찾습니다.
느슨한 법령 속에 사용자에게 유리한 구조조정의 칼날은 참으로 가혹하게 공권력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일생을 바친 직장에서 해고되고 재해와 장애를 가진 이들은 그 이유만으로 쫓겨났으며 그로 인한 가정은 파탄이 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노동자의 구속은 어느 정부 때보다도 그 도를 넘고 있습니다.
농업분야는 너무도 뚜렷한 결과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만금 사업을 강행할 때는 '식량안보를 위해서' 라고 강변하더니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식량증산정책의 포기' 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가장 기뻐해야 할 이 계절, 농민들은 지금 투쟁의 장으로 나서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확인하는 질문들
우리의 이런 실망이 일방적이지 않기 위해 몇 가지를 묻고자 합니다.
첫째, 현 정부는 과연 개혁의 의지가 아직도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민생과는 뒷전인 국회공방, 각종비리에 연루되거나 의혹에 쌓인 행정, 권력을 오,남용하는 사법권, 낮아진 지지도를 척도 삼아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둘째, '국민의 공복'을 위해 부여된 정권일 터인데, 대통령께서는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마치 정치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재집권이란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자 선택임을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 인권국가의 기치를 포기할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노동자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에는 가족과 가정이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이 되는 틀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런 노동자들을 단지 조정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는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선택해야 할 시점
이처럼 우리의 실망이란 지난 경제정책이 노동자 농. 어민들에게 차별적으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의 주체이면서도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공권력을 앞세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어쩌면 이런 현실은 '경제회생과 인권국가건설'이라는 표어로부터 예고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자본과 인권이라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생산적 복지'라는 감탄할만한 수식어가 세인의 관심을 집중하였지만 이 또한 결과적으로 민중생존권이라는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미군에 대한 지원금은 늘어나고 사회복지를 위한 예산은 삭감이 되는 현실은 민중들의 답답한 현실만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첫째 그것은 경제노선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화의 무한경쟁 시대이니 경쟁력과 효율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인간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산적복지정책'도 각자의 경쟁력에 따라 이 노선에 끼워 맞추기를 강요하고 있을 뿐입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행위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것은 신뢰가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여 현재 경제정책만이 최선이라는 전문가적 결론이 있다 할 지라도 그것은 각자의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노동자 한 사람의 정리해고에 관여한 정책이 실행되려면 '대통령 스스로 실직'할 것을 각오하고 다가갔어야 했었습니다. 노동자. 농,어민의 집회 앞에 나설 것은 무장한 경찰들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절박한 심정을 설득하는 대통령의 모습이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뢰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신뢰 회복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 대단히 중요함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단위원장 석방은 신뢰의 단초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재 구속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관해서는 이미 언론에 드러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말이었지 약속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사제단은 이 사건이 정부와 국민사이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단초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정치인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 위원장은 조건 없이 석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상대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복음은 쌍날칼"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에 가까운 말을 대통령께 드리며 우리도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매향리에서 새만금에서 도시와 농.어촌의 현장에서 시위와 사목을 하였지만 진정으로 동참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소외받는 이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제들은 이곳 부평 산곡동으로 몰려와 노동자들의 소리를 듣고 만나며 '나라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의 사제들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곡히 대통령께도 촉구합니다. 이제는 결단과 선택만이 남아있습니다.

2001년 10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7일째 단식기도중인 공동대표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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