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2.2.1> '단병호 이야기' 보도 전문
- 한겨레 신문은 2월1일자 9면 전면 3분의 2를 털어 <노동과 세계> 차남호 편집국장의 '단병호 이야기'라는 큰 글을 실었습니다. 그 전문을 옮겼습니다.
단병호 이야기
- 투쟁한다 고로 존재한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구속된 지 6개월이 지났다. 노·정 대화를 위해 스스로 검찰에 출두했지만, 한가닥 남았던 신뢰는 오간데 없고 감옥에 갇히는 노동자들만 늘어났다. 그의 투옥에 대해 나라 밖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0년대 전노협 시절부터 그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낸 한 노동운동가가 단 위원장에 대한 나라 밖의 관심과 나라 안의 무관심을 대비시키며 우리 사회의 둔감함을 아프게 지적했다.
- 대통령을 부끄럽게 만들다
단병호. 사람들은 그 이름에서 두 가지를 떠올린다.
그 첫번째가 `고난받는 노동자'. 지난 1989년 서울지하철 파업 때 `제3자 개입'을 이유로 구속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4년의 옥살이와 3년의 수배생활을 했다.
지금도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고난에 겨운 나머지 제도정치권에 `투항'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러나 단병호는 여전히 역사가 지워준 불가피한 고난을 감내하고 있다.
그의 이름에는 `과격한 노동운동가'라는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 시절부터 따라다닌 꼬리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듣던 것과는 딴판으로 소탈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도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던 이 인물을 둘러싸고 최근 놀라운 일이 빚어졌다. 지난 22일은 `한국의 구속노동자 석방을 위한 연대의 날'이었다. 세계 35개국 44개 도시의 한국공관 앞에서 구속된 한국의 노동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국제노동운동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 동시다발투쟁에서 참가자들은 “김대중 대통령, 부끄러운 줄 아시오!(shame on you!)”라고 외쳤다.
그들이 유독 한국의 노동자들을 문제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의 정부' 4년 동안 7백여명의 노동자들이 구속됐다. 김영삼 정권이 5년에 걸쳐 구속한 노동자보다 더 많은 숫자다.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만 40여명이다. 이들의 `세계화한' 안목으로는 노동운동을 펼쳤다는 이유를 들어 그 지도자까지 잡아가두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야만이다.
-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지키다
24일 저녁, 문화방송 뉴스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방영됐다. 한국·노르웨이 정상회담에 대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노르웨이의 한 여기자가 구속노동자를 석방할 뜻이 있는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물었던 것이다.
현 정권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런 질문이었음에 틀림없다. 외신기자들이 최고권력자를 앞에 세워놓고 반민주적 통치의 부당함을 따져 묻던 과거 군부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김대통령의 답변은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법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면 얼마든지 선처할 용의가 있습니다.”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한·노 정상회담에서도 노르웨이 보네비크 총리는 한국의 노동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인권대통령'을 자부해온 김 대통령이 자신에게 노벨상을 선사한 나라에 가서 한국의 벌거벗은 노동인권상황을 빌미로 톡톡히 `망신'당한 셈이다.
그를 망각의 늪에서 건져올린 것은 먼 나라 사람들만이 아니다.
최근 사이버 정치주식투자로 유명한 포스닥(www.posdaq.co.kr)에서 `단병호주'가 쟁쟁한 대선주자군과 어깨를 나란히 10위권을 달리고 있다. `단병호주'가 꾸준히 `김대중주'를 앞서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는 정치인도 아닐뿐더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정치할 뜻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노동운동을 기성정치권 진입을 위한 `경력관리' 쯤으로 활용해온 노동계 한쪽의 빗나간 관행을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초대 권영길, 2대 이갑용에 이어 단 위원장도 민주노총의 건강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감옥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도 어쩔 수 없는 노동자다.
그는 민주노총 호봉표에 따라 173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기본급 150만원, 4명의 가족에게 따라붙는 수당이 8만원, 식대 10만원, 통신지원비 5만원이다. 월 90만원의 위원장 판공비가 있지만, 지금은 구속상태라는 이유로 그마저 나오지 않는다.
400%의 상여금을 더해도 다섯 식구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그의 말을 빌리면 “일단 집에 가져가는데 그 중 반은 다시 되돌려 받아 쓴다”. 결국 부인 이선애씨가 집 근처에서 야채가게를 해 살림을 꾸린다.
그는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딸과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방황하는 아들 문제가 고민이고, 그동안 함께 지낸 시간도 많지 않아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다. 그나마 지금은 아들의 곁에 가려야 갈 수가 없다.
그는 이제 감옥에서 하루종일 책과 씨름하는 것으로 피붙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최근 그가 반입한 책들은 <노동의 희망>(강수돌), <당대비평>17호, <지배와 사보타지>(안토니오 네그리), <전쟁과 평화>(노엄 촘스키) 등이다.
마흔의 나이에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3년 만에 전노협 의장을 맡아 지금까지 한국노동운동을 대표해온 그가 책 속에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살고 있는 당대를 비평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갈망하며 지배에 맞선 노동의 희망을 찾는 것.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그 일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그는 지금 감옥에 있다. 그리고 전세계 노동자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겨울, 4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자. 그의 이름은 단병호다.
차남호 <노동과 세계> 편집국장
- 한겨레 신문은 2월1일자 9면 전면 3분의 2를 털어 <노동과 세계> 차남호 편집국장의 '단병호 이야기'라는 큰 글을 실었습니다. 그 전문을 옮겼습니다.
단병호 이야기
- 투쟁한다 고로 존재한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구속된 지 6개월이 지났다. 노·정 대화를 위해 스스로 검찰에 출두했지만, 한가닥 남았던 신뢰는 오간데 없고 감옥에 갇히는 노동자들만 늘어났다. 그의 투옥에 대해 나라 밖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0년대 전노협 시절부터 그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낸 한 노동운동가가 단 위원장에 대한 나라 밖의 관심과 나라 안의 무관심을 대비시키며 우리 사회의 둔감함을 아프게 지적했다.
- 대통령을 부끄럽게 만들다
단병호. 사람들은 그 이름에서 두 가지를 떠올린다.
그 첫번째가 `고난받는 노동자'. 지난 1989년 서울지하철 파업 때 `제3자 개입'을 이유로 구속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4년의 옥살이와 3년의 수배생활을 했다.
지금도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고난에 겨운 나머지 제도정치권에 `투항'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러나 단병호는 여전히 역사가 지워준 불가피한 고난을 감내하고 있다.
그의 이름에는 `과격한 노동운동가'라는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 시절부터 따라다닌 꼬리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듣던 것과는 딴판으로 소탈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도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던 이 인물을 둘러싸고 최근 놀라운 일이 빚어졌다. 지난 22일은 `한국의 구속노동자 석방을 위한 연대의 날'이었다. 세계 35개국 44개 도시의 한국공관 앞에서 구속된 한국의 노동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국제노동운동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 동시다발투쟁에서 참가자들은 “김대중 대통령, 부끄러운 줄 아시오!(shame on you!)”라고 외쳤다.
그들이 유독 한국의 노동자들을 문제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의 정부' 4년 동안 7백여명의 노동자들이 구속됐다. 김영삼 정권이 5년에 걸쳐 구속한 노동자보다 더 많은 숫자다.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만 40여명이다. 이들의 `세계화한' 안목으로는 노동운동을 펼쳤다는 이유를 들어 그 지도자까지 잡아가두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야만이다.
-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지키다
24일 저녁, 문화방송 뉴스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방영됐다. 한국·노르웨이 정상회담에 대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노르웨이의 한 여기자가 구속노동자를 석방할 뜻이 있는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물었던 것이다.
현 정권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런 질문이었음에 틀림없다. 외신기자들이 최고권력자를 앞에 세워놓고 반민주적 통치의 부당함을 따져 묻던 과거 군부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김대통령의 답변은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법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면 얼마든지 선처할 용의가 있습니다.”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한·노 정상회담에서도 노르웨이 보네비크 총리는 한국의 노동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인권대통령'을 자부해온 김 대통령이 자신에게 노벨상을 선사한 나라에 가서 한국의 벌거벗은 노동인권상황을 빌미로 톡톡히 `망신'당한 셈이다.
그를 망각의 늪에서 건져올린 것은 먼 나라 사람들만이 아니다.
최근 사이버 정치주식투자로 유명한 포스닥(www.posdaq.co.kr)에서 `단병호주'가 쟁쟁한 대선주자군과 어깨를 나란히 10위권을 달리고 있다. `단병호주'가 꾸준히 `김대중주'를 앞서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는 정치인도 아닐뿐더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정치할 뜻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노동운동을 기성정치권 진입을 위한 `경력관리' 쯤으로 활용해온 노동계 한쪽의 빗나간 관행을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초대 권영길, 2대 이갑용에 이어 단 위원장도 민주노총의 건강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감옥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도 어쩔 수 없는 노동자다.
그는 민주노총 호봉표에 따라 173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기본급 150만원, 4명의 가족에게 따라붙는 수당이 8만원, 식대 10만원, 통신지원비 5만원이다. 월 90만원의 위원장 판공비가 있지만, 지금은 구속상태라는 이유로 그마저 나오지 않는다.
400%의 상여금을 더해도 다섯 식구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그의 말을 빌리면 “일단 집에 가져가는데 그 중 반은 다시 되돌려 받아 쓴다”. 결국 부인 이선애씨가 집 근처에서 야채가게를 해 살림을 꾸린다.
그는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딸과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방황하는 아들 문제가 고민이고, 그동안 함께 지낸 시간도 많지 않아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다. 그나마 지금은 아들의 곁에 가려야 갈 수가 없다.
그는 이제 감옥에서 하루종일 책과 씨름하는 것으로 피붙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최근 그가 반입한 책들은 <노동의 희망>(강수돌), <당대비평>17호, <지배와 사보타지>(안토니오 네그리), <전쟁과 평화>(노엄 촘스키) 등이다.
마흔의 나이에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3년 만에 전노협 의장을 맡아 지금까지 한국노동운동을 대표해온 그가 책 속에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살고 있는 당대를 비평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갈망하며 지배에 맞선 노동의 희망을 찾는 것.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그 일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그는 지금 감옥에 있다. 그리고 전세계 노동자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겨울, 4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자. 그의 이름은 단병호다.
차남호 <노동과 세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