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2002.04.02 보도자료 1 >
발전파업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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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크게 늦은 감이 있으나 한달 넘게 계속된 발전파업이 마무리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만,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싸운 37일이었습니다. 발전소 매각 찬반 사회논란의 발원지였던 발전파업이 남긴 의미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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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번 파업이 남긴 가장 중요한 점은 발전소 매각을 비롯한 철도 가스 등 기간산업 민영화를 둘러싼 활발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의 과제를 제기한 것이다.
○ 지난 2월25일 시작된 철도 가스 발전 3사 공공파업은 발전파업 타결로 한 달여 만에 공식 마무리 됐다. 철도 가스파업은 일찍 끝났지만 발전파업은 한 달을 넘기면서 우리사회에 기간산업을 외국자본과 재벌에 파는 게 옳은가에 대한 커다란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발전산업 민영화 관련 법률이 여야합의로 국회를 통과했으며 국민동의를 얻은 것이라 했지만 각계각층은 물론 국민 다수는 생각이 달랐다. 한길리서치가 여론조사한 데 따르면 국민 81%가 발전소를 매각하는 데 반대했으며, 86%가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파업 한 달 여 동안 권투경기로 친다면 14라운드까지는 발전소 매각 유보와 국민적 합의를 주장하는 노조 쪽이 국민 여론전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마지막 15라운드에서 이를 뒤집어 KO 역전승을 거두려는 생각으로 '민영화 동의하지 않으면 4천명 전원해고'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했고, 노조는 이를 '민영화 노코멘트' 합의론으로 맞받았다. 뒤돌아보면 노조는 일찍부터 단체협약을 미흡하지만 중노위 중재재정 결과로 확보한 상황에서 발전소 매각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투쟁목표를 집중했고, 이는 상당히 성공한 게 사실이다. 남은 것은 민영화 동의를 뿌리치면서 성과를 굳히고 타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타결내용은 어차피 민영화 봉합-징계최소화로 일찍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KO 역전승에 집착하느라 초강경책을 써서 타결시일이 늦춰졌을 뿐이다.
○ 정부는 발전파업 한 달 동안 확산된 발전소 매각 유보 여론을 되돌리려는 듯 '민영화에 동의하지 않으면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4천명을 집단해고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파업 마무리는 정부의 '향후 교섭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대신 노조가 수정 제시한 '3.8 중노위 중재재정을 존중하여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로 합의됐다. 이 문구를 놓고 아마도 정부는 원래 주장하고픈 앞으로 민영화에 대해선 노조가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석할 것이 뻔하지만, 3.8 중노위라는 수식어로 보나 파업과 교섭의 흐름으로 보나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 합의안을 서로가 강조점을 달리 해석하는 가운데 발전소 매각 문제는 여전히 가장 큰 불씨로 남을 것이다. 더구나 한 달 동안 확산된 발전소 매각 유보 여론은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나아가서 이번 파업을 거치면서 현 정부 임기 안에 발전소를 매각하는 일은 물리적으로나 정치 사회적으로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노조의 엄청난 저항과 국민여론의 반발, 정부의 졸속 추진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직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지 않은 철도 가스 민영화도 사실상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고 만약 정부가 무리하게 임기 내 추진을 강행하면 다시 미증유의 파업이 터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 기간산업 민영화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이 과제를 제대로 푸는 것이 이번과 같은 파업이 재발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아울러 발전파업을 노동문제로만 인식하지 않고 국민생활과 나라경제의 중요한 문제로 판단해 연대해 나선 수많은 지식인, 사회원로, 사회단체, 문화예술인 등의 연대 또한 귀중한 성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앞으로 참된 국민적 토론을 벌여나가야 할 과제가 우리 사회에 안겨졌다고 하겠다.
※ 발전소 매각 유보와 국민적 합의 촉구 각계 선언 현황 :
- 3월7일 강원룡 목사 등 각계각층 988인 국민적 토론 촉구 선언
- 3월8일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발전소 매각 유보 시국선언
- 3월16일 박형규 목사 이돈명 변호사 등 사회원로 5인 대화촉구 기자회견
- 3월18일 한나라 안영근 민주당 박인상 등 여야 의원 26명 대화해결 촉구 선언
- 3월19일 서울대 김수행 교수 등 경제학 경영학 전공 교수 102인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선언
- 3월20일 사회학 전공 교수 43명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시국선언
- 3월21일 교육의료 13개 단체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선언
- 3월 27일 환경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여성연합 민주노총 전력민영화 유보 촉구 공동성명 발표
- 3월28일 정지영 영화감독 등 문화예술인 105명 발전소 매각 유보 선언
- 3월28일 발전소 초급간부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선언
- 3월28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발전소 매각 유보 대화해결 촉구 선언
- 3월29일 서강대 손호철 교수 등 정치학자 30명 발전소 매각 유보 성명 발표
- 3월29일 경실련 정부에 발전파업 대화해결 촉구 성명
- 3월31일 발전소의 해외매각에 대한 천주교 인천교구의 입장 성명 발표
- 4월01일 영국 11개 대학 유학생 40명 전력산업 민영화 대화 해결 촉구 견해 발표
- 4월01일 대구지역 학계, 법조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332명 발전매각 유보 촉구 시국선언
- 4월01일 한국산업노동학회 발전매각 국민합의 유보 대화해결 촉구 시국선언
둘째, 기존의 노정관계, 노동계 내부의 지형에 변화 요소가 나타났으며 이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 민주노총은 2월25일 공공3사 파업이 터지자 26일 100여 개 사업장 10만여명 규모의 1차 연대 총파업을 결행했다. 또한 철도 가스와 달리 발전파업이 장기화되자 산개파업 중인 조합원 재워주기 운동, 모금운동을 비롯 주 3∼4차례 대규모 집회는 물론 4월2일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총력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노총 소속 가스공사노조가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바꿨으며, 철도노조 또한 조합원 총회를 거쳐 상급단체 변경을 추진키로 하는 등 투쟁에 따른 조직강화의 성과를 거뒀다. 4월2일 예정 민주노총 총파업과 연계해서 철도, 가스노조가 2차 연대 총파업을 결의하기도 했다.
○ 이 같은 노동계 지형 변화 움직임은 정부를 상당히 긴장시켜 강경대응에 나서도록 한 요인이 됐으나, 민주노총의 4.2 총파업이 예상을 뛰어넘어 대규모로 조직되고 강경대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대화를 통한 조기해결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
○ 교섭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그 동안 노사정위원회가 유일한 대화창구라며 민주노총이 요구한 노정교섭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노정교섭은 불가피하며 발전파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노정교섭을 수도 없이 거치게 됐다.
○ 이 같은 변화는 이후 노정관계 전개 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된다. 당장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놓고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 합의를 추진하려던 정부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점은 공무원 노조 허용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이 현행 정부안이 노동법 개악 내용이 지나치게 많아 주5일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한다면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노총의 행보를 크게 제약할 것이고 정부 또한 내용의 대폭 수정 없이 그대로 강행할 경우 또 다른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지난 4년에 걸친 노사정위원회 평가 작업이 시작되고 있지만, 민주노총 배제전략과 동전의 양면 관계인 노사정위원회의 앞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정부는 벌써부터 대통령이 나서서 '과격 노동운동'은 안 된다느니, 노조가 민영화를 더 이상 교섭대상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고 규정하면서 민주노총 운동을 막아서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뚜렷한 노동계의 축을 형성한 민주노총 배제 전략은 사회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게 37일에 걸친 공공파업 과정에서 얻어야 할 교훈의 하나이다.
셋째, 발전파업 과정에서 금속 중심의 1차 연대총파업, 4.2 예정된 14만 규모의 총파업 준비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귀중한 연대투쟁으로 이후 노동운동의 기풍을 새롭게 하는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 민영화 동의를 강요하던 정부의 초강경 방침은 결국 민주노총 총파업을 코앞에 두고서야 협상 타결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자기 사업장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업장 문제로 동조 연대파업을 벌인 것 자체도 90년 현대중공업 파업 강제진압에 항의한 전노협 총파업 후 10여 년만의 일이다. 더 나아가서 국가 기간산업을 외국과 재벌에 파는 데 반대해 결행한 총파업은 90년대 노동운동에 퍼져있던 기업별노조주의와 임단협 투쟁 중심 활동 기풍을 크게 쇄신하는 계기가 됐다.
○ 또한 발전파업 뿐 아니라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강한 배제 의사를 담은 정부의 도를 넘어선 민영화 동의 강요, 4천명 집단해고에 맞서 예상을 뛰어넘는 실제 파업결의로 모아낸 4.2 총파업 준비는 앞으로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에 건강한 연대정신이 깃들게 하는 데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이 같은 건강한 연대투쟁의 결과로 발전노조 와해를 노린 정부의 초강경 탄압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가스노조 민주노총 가입, 철도노조 민주노총 가입 추진에서 보듯 민주노조운동을 강화시키는 큰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넷째, 파업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이룰 수 있는 대등한 노사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 정부의 기간산업 민영화 강행도 큰 요인이었지만 발전파업이 터지고 장기화된 또 다른 요인은 한 마디로 대화 부족이다. 발전회사 사장단은 회사가 한전에서 분리돼 발전노조가 새로 결성된 후 7개월 동안 150여 개 단협 조항 대부분을 타결해주지 않는 등 극도의 대화기피증세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노조는 전임자도 없이 활동해야 했고 회사가 조합비를 공제해주지 않아 노조 위원장이 은행에서 사비로 대출해 활동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 파업 뒤에도 노사간 대화부족의 후유증은 그대로 나타나 파업 한 달 동안 노사가 만난 시간도 그리 길지 않지만, 만난 자리에서도 실질 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와 산자부를 대변하는 발전 5개사 사장단은 파업 기간 동안 무려 세 번 씩 먼저 대화중단을 선언했다.
파업 마무리 후 징계와 손배청구 문제 등으로 노사는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더욱 끈기 있는 대화자세가 요구되지만 대량징계와 탄압으로 일을 벌릴 경우 철도와 같이 다시 재파업 움직임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파업 뒷수습에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산개파업' '번개작전' 등 독특한 파업전술과 노조원 가족들의 적극적 활동은 이후 노동계 파업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 2월26일 서울대에서 농성 중이던 5천여 노조원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을 때 경찰과 기자들은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지도부가 머무는 명동이나 철도노조원이 모여있는 건국대에 재집결할 것으로 보고 병력을 배치했고, 기자들은 조를 나눠 노조원들을 미행까지 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대부분 조를 짜서 피곤한 몸을 풀러 목욕탕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몰랐다. 하루가 지난 뒤 일명 '산개파업'에 돌입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 파업은 한 달을 넘겼다. 노조는 산개파업 도중에 두 번에 걸쳐 번개처럼 집결했다 경찰을 따돌리고 다시 산개하는 번개작전도 구사했다.
○ 경찰의 진압을 피하면서 장기파업을 가능하게 했던 산개파업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을 활용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산개파업은 서울대에 모여있던 5천여 노조원들이 분반토론을 거쳐 가장 많이 나온 전술로 채택된 것이다. 강한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산개전술을 난생처음 파업하는 발전노조원들이 복귀율 논란을 잠재우며 성공시킨 비결을 두고 말이 많다. 발전소 매각에 대한 강한 저항, 과거 어용 한전노조에 대한 강한 배신감, 가족들의 후원, 명동 지도부의 강한 지도력 등등, 심지어 정부는 오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라 그렇다는 기상천외한 해석까지 내놓았다.
○ 32개 발전소 가운데 20여개 발전소에서 조직된 가족모임인 가족대책위의 활동은 눈부셨다. 초기 회사 쪽의 설명회를 무산시키는 일부터 시작해 수 차례 서울 상경집회는 물론이고 집단으로 사택에서 거주하는 가족들의 버팀목이 됐다. 회사가 4천명 집단해고라는 초강수를 두어 1천 여명을 반강제로 복귀시키자 가족들이 나서서 출근투쟁을 하면서 남편들의 파업을 지켜주기도 했다.
○ 파업과정에서 진압대상을 놓친 경찰이 노조원들이 머무르던 여관 콘도 등을 검문검색해 강제로 복귀서를 쓰게 하자 민주노총이 이를 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3월 24일 연세대 번개집회 후 연행된 노조원들을 경찰이 강제로 복귀서를 쓰게 한 후 25일 종로서 앞에서 회사차량에 인계해 태우려 하자 민주노총 변호사가 감금행위라면 항의해 풀어준 일도 있었다.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머무는 사택을 비워달라는 정부의 처사가 알려지면서 정부가 너무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도 했다. "패배는 있어도 항복은 없다"는 말로 대표되는 발전노조 이호동 위원장 등 파업 지도부의 움직임도 큰 관심거리였다.
○ 세계 최초의 전력파업인 발전파업은 과연 파업 후 전력대란이 언제 일어나느냐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사람에 따라 사흘, 닷새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모두 빗나갔다. 한 달은 버틸 수 있다던 산자부 공언도 19일만에 절전운동 호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어쨌든 불안감은 있었어도 한 달 동안 전력공급에 큰 문제가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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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크게 늦은 감이 있으나 한달 넘게 계속된 발전파업이 마무리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만,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싸운 37일이었습니다. 발전소 매각 찬반 사회논란의 발원지였던 발전파업이 남긴 의미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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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번 파업이 남긴 가장 중요한 점은 발전소 매각을 비롯한 철도 가스 등 기간산업 민영화를 둘러싼 활발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의 과제를 제기한 것이다.
○ 지난 2월25일 시작된 철도 가스 발전 3사 공공파업은 발전파업 타결로 한 달여 만에 공식 마무리 됐다. 철도 가스파업은 일찍 끝났지만 발전파업은 한 달을 넘기면서 우리사회에 기간산업을 외국자본과 재벌에 파는 게 옳은가에 대한 커다란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발전산업 민영화 관련 법률이 여야합의로 국회를 통과했으며 국민동의를 얻은 것이라 했지만 각계각층은 물론 국민 다수는 생각이 달랐다. 한길리서치가 여론조사한 데 따르면 국민 81%가 발전소를 매각하는 데 반대했으며, 86%가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파업 한 달 여 동안 권투경기로 친다면 14라운드까지는 발전소 매각 유보와 국민적 합의를 주장하는 노조 쪽이 국민 여론전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마지막 15라운드에서 이를 뒤집어 KO 역전승을 거두려는 생각으로 '민영화 동의하지 않으면 4천명 전원해고'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했고, 노조는 이를 '민영화 노코멘트' 합의론으로 맞받았다. 뒤돌아보면 노조는 일찍부터 단체협약을 미흡하지만 중노위 중재재정 결과로 확보한 상황에서 발전소 매각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투쟁목표를 집중했고, 이는 상당히 성공한 게 사실이다. 남은 것은 민영화 동의를 뿌리치면서 성과를 굳히고 타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타결내용은 어차피 민영화 봉합-징계최소화로 일찍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KO 역전승에 집착하느라 초강경책을 써서 타결시일이 늦춰졌을 뿐이다.
○ 정부는 발전파업 한 달 동안 확산된 발전소 매각 유보 여론을 되돌리려는 듯 '민영화에 동의하지 않으면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4천명을 집단해고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파업 마무리는 정부의 '향후 교섭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대신 노조가 수정 제시한 '3.8 중노위 중재재정을 존중하여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로 합의됐다. 이 문구를 놓고 아마도 정부는 원래 주장하고픈 앞으로 민영화에 대해선 노조가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석할 것이 뻔하지만, 3.8 중노위라는 수식어로 보나 파업과 교섭의 흐름으로 보나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 합의안을 서로가 강조점을 달리 해석하는 가운데 발전소 매각 문제는 여전히 가장 큰 불씨로 남을 것이다. 더구나 한 달 동안 확산된 발전소 매각 유보 여론은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나아가서 이번 파업을 거치면서 현 정부 임기 안에 발전소를 매각하는 일은 물리적으로나 정치 사회적으로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노조의 엄청난 저항과 국민여론의 반발, 정부의 졸속 추진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직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지 않은 철도 가스 민영화도 사실상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고 만약 정부가 무리하게 임기 내 추진을 강행하면 다시 미증유의 파업이 터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 기간산업 민영화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이 과제를 제대로 푸는 것이 이번과 같은 파업이 재발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아울러 발전파업을 노동문제로만 인식하지 않고 국민생활과 나라경제의 중요한 문제로 판단해 연대해 나선 수많은 지식인, 사회원로, 사회단체, 문화예술인 등의 연대 또한 귀중한 성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앞으로 참된 국민적 토론을 벌여나가야 할 과제가 우리 사회에 안겨졌다고 하겠다.
※ 발전소 매각 유보와 국민적 합의 촉구 각계 선언 현황 :
- 3월7일 강원룡 목사 등 각계각층 988인 국민적 토론 촉구 선언
- 3월8일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발전소 매각 유보 시국선언
- 3월16일 박형규 목사 이돈명 변호사 등 사회원로 5인 대화촉구 기자회견
- 3월18일 한나라 안영근 민주당 박인상 등 여야 의원 26명 대화해결 촉구 선언
- 3월19일 서울대 김수행 교수 등 경제학 경영학 전공 교수 102인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선언
- 3월20일 사회학 전공 교수 43명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시국선언
- 3월21일 교육의료 13개 단체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선언
- 3월 27일 환경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여성연합 민주노총 전력민영화 유보 촉구 공동성명 발표
- 3월28일 정지영 영화감독 등 문화예술인 105명 발전소 매각 유보 선언
- 3월28일 발전소 초급간부 발전소 매각 유보 촉구 선언
- 3월28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발전소 매각 유보 대화해결 촉구 선언
- 3월29일 서강대 손호철 교수 등 정치학자 30명 발전소 매각 유보 성명 발표
- 3월29일 경실련 정부에 발전파업 대화해결 촉구 성명
- 3월31일 발전소의 해외매각에 대한 천주교 인천교구의 입장 성명 발표
- 4월01일 영국 11개 대학 유학생 40명 전력산업 민영화 대화 해결 촉구 견해 발표
- 4월01일 대구지역 학계, 법조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332명 발전매각 유보 촉구 시국선언
- 4월01일 한국산업노동학회 발전매각 국민합의 유보 대화해결 촉구 시국선언
둘째, 기존의 노정관계, 노동계 내부의 지형에 변화 요소가 나타났으며 이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 민주노총은 2월25일 공공3사 파업이 터지자 26일 100여 개 사업장 10만여명 규모의 1차 연대 총파업을 결행했다. 또한 철도 가스와 달리 발전파업이 장기화되자 산개파업 중인 조합원 재워주기 운동, 모금운동을 비롯 주 3∼4차례 대규모 집회는 물론 4월2일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총력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노총 소속 가스공사노조가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바꿨으며, 철도노조 또한 조합원 총회를 거쳐 상급단체 변경을 추진키로 하는 등 투쟁에 따른 조직강화의 성과를 거뒀다. 4월2일 예정 민주노총 총파업과 연계해서 철도, 가스노조가 2차 연대 총파업을 결의하기도 했다.
○ 이 같은 노동계 지형 변화 움직임은 정부를 상당히 긴장시켜 강경대응에 나서도록 한 요인이 됐으나, 민주노총의 4.2 총파업이 예상을 뛰어넘어 대규모로 조직되고 강경대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대화를 통한 조기해결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
○ 교섭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그 동안 노사정위원회가 유일한 대화창구라며 민주노총이 요구한 노정교섭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노정교섭은 불가피하며 발전파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노정교섭을 수도 없이 거치게 됐다.
○ 이 같은 변화는 이후 노정관계 전개 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된다. 당장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놓고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 합의를 추진하려던 정부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점은 공무원 노조 허용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이 현행 정부안이 노동법 개악 내용이 지나치게 많아 주5일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한다면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노총의 행보를 크게 제약할 것이고 정부 또한 내용의 대폭 수정 없이 그대로 강행할 경우 또 다른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지난 4년에 걸친 노사정위원회 평가 작업이 시작되고 있지만, 민주노총 배제전략과 동전의 양면 관계인 노사정위원회의 앞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정부는 벌써부터 대통령이 나서서 '과격 노동운동'은 안 된다느니, 노조가 민영화를 더 이상 교섭대상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고 규정하면서 민주노총 운동을 막아서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뚜렷한 노동계의 축을 형성한 민주노총 배제 전략은 사회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게 37일에 걸친 공공파업 과정에서 얻어야 할 교훈의 하나이다.
셋째, 발전파업 과정에서 금속 중심의 1차 연대총파업, 4.2 예정된 14만 규모의 총파업 준비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귀중한 연대투쟁으로 이후 노동운동의 기풍을 새롭게 하는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 민영화 동의를 강요하던 정부의 초강경 방침은 결국 민주노총 총파업을 코앞에 두고서야 협상 타결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자기 사업장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업장 문제로 동조 연대파업을 벌인 것 자체도 90년 현대중공업 파업 강제진압에 항의한 전노협 총파업 후 10여 년만의 일이다. 더 나아가서 국가 기간산업을 외국과 재벌에 파는 데 반대해 결행한 총파업은 90년대 노동운동에 퍼져있던 기업별노조주의와 임단협 투쟁 중심 활동 기풍을 크게 쇄신하는 계기가 됐다.
○ 또한 발전파업 뿐 아니라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강한 배제 의사를 담은 정부의 도를 넘어선 민영화 동의 강요, 4천명 집단해고에 맞서 예상을 뛰어넘는 실제 파업결의로 모아낸 4.2 총파업 준비는 앞으로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에 건강한 연대정신이 깃들게 하는 데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이 같은 건강한 연대투쟁의 결과로 발전노조 와해를 노린 정부의 초강경 탄압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가스노조 민주노총 가입, 철도노조 민주노총 가입 추진에서 보듯 민주노조운동을 강화시키는 큰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넷째, 파업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이룰 수 있는 대등한 노사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 정부의 기간산업 민영화 강행도 큰 요인이었지만 발전파업이 터지고 장기화된 또 다른 요인은 한 마디로 대화 부족이다. 발전회사 사장단은 회사가 한전에서 분리돼 발전노조가 새로 결성된 후 7개월 동안 150여 개 단협 조항 대부분을 타결해주지 않는 등 극도의 대화기피증세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노조는 전임자도 없이 활동해야 했고 회사가 조합비를 공제해주지 않아 노조 위원장이 은행에서 사비로 대출해 활동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 파업 뒤에도 노사간 대화부족의 후유증은 그대로 나타나 파업 한 달 동안 노사가 만난 시간도 그리 길지 않지만, 만난 자리에서도 실질 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와 산자부를 대변하는 발전 5개사 사장단은 파업 기간 동안 무려 세 번 씩 먼저 대화중단을 선언했다.
파업 마무리 후 징계와 손배청구 문제 등으로 노사는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더욱 끈기 있는 대화자세가 요구되지만 대량징계와 탄압으로 일을 벌릴 경우 철도와 같이 다시 재파업 움직임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파업 뒷수습에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산개파업' '번개작전' 등 독특한 파업전술과 노조원 가족들의 적극적 활동은 이후 노동계 파업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 2월26일 서울대에서 농성 중이던 5천여 노조원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을 때 경찰과 기자들은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지도부가 머무는 명동이나 철도노조원이 모여있는 건국대에 재집결할 것으로 보고 병력을 배치했고, 기자들은 조를 나눠 노조원들을 미행까지 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대부분 조를 짜서 피곤한 몸을 풀러 목욕탕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몰랐다. 하루가 지난 뒤 일명 '산개파업'에 돌입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 파업은 한 달을 넘겼다. 노조는 산개파업 도중에 두 번에 걸쳐 번개처럼 집결했다 경찰을 따돌리고 다시 산개하는 번개작전도 구사했다.
○ 경찰의 진압을 피하면서 장기파업을 가능하게 했던 산개파업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을 활용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산개파업은 서울대에 모여있던 5천여 노조원들이 분반토론을 거쳐 가장 많이 나온 전술로 채택된 것이다. 강한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산개전술을 난생처음 파업하는 발전노조원들이 복귀율 논란을 잠재우며 성공시킨 비결을 두고 말이 많다. 발전소 매각에 대한 강한 저항, 과거 어용 한전노조에 대한 강한 배신감, 가족들의 후원, 명동 지도부의 강한 지도력 등등, 심지어 정부는 오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라 그렇다는 기상천외한 해석까지 내놓았다.
○ 32개 발전소 가운데 20여개 발전소에서 조직된 가족모임인 가족대책위의 활동은 눈부셨다. 초기 회사 쪽의 설명회를 무산시키는 일부터 시작해 수 차례 서울 상경집회는 물론이고 집단으로 사택에서 거주하는 가족들의 버팀목이 됐다. 회사가 4천명 집단해고라는 초강수를 두어 1천 여명을 반강제로 복귀시키자 가족들이 나서서 출근투쟁을 하면서 남편들의 파업을 지켜주기도 했다.
○ 파업과정에서 진압대상을 놓친 경찰이 노조원들이 머무르던 여관 콘도 등을 검문검색해 강제로 복귀서를 쓰게 하자 민주노총이 이를 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3월 24일 연세대 번개집회 후 연행된 노조원들을 경찰이 강제로 복귀서를 쓰게 한 후 25일 종로서 앞에서 회사차량에 인계해 태우려 하자 민주노총 변호사가 감금행위라면 항의해 풀어준 일도 있었다.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머무는 사택을 비워달라는 정부의 처사가 알려지면서 정부가 너무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도 했다. "패배는 있어도 항복은 없다"는 말로 대표되는 발전노조 이호동 위원장 등 파업 지도부의 움직임도 큰 관심거리였다.
○ 세계 최초의 전력파업인 발전파업은 과연 파업 후 전력대란이 언제 일어나느냐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사람에 따라 사흘, 닷새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모두 빗나갔다. 한 달은 버틸 수 있다던 산자부 공언도 19일만에 절전운동 호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어쨌든 불안감은 있었어도 한 달 동안 전력공급에 큰 문제가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