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2.6.13] - 왜냐면
월드컵이여, 어린이 노동에 빨간딱지를!
파키스탄 북부 마호트라라는 마을에 들어서면 길가 창고 같은 건물에 어린이와 어른들이 가죽 조각을 손으로 깁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2살 난 타리크라는 남자아이도 여기서 일한다. 타리크와 같은 10살 안팎 어린이 수천 명이 축구공 만드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나이키 상표가 붙은 공을 만드는데, 공 하나를 깁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린다. 어린이들이 공 하나를 만들면 우리 돈으로 800원을 받는데, 파키스탄 현지 공장에서 이 공을 사려면 8천원, 똑같은 공을 미국에서 사려면 4만원에서 7만원이 든다. 미국이 1년에 수입하는 축구공은 900만 개인데, 이 중 반이 파키스탄에서 생산된다. 공에는 ‘수제품’이라는 설명이 자랑스럽게 찍혀 있다. 바로 어린이들이 손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공장 어린이들은 모두 공장 주인이 이들의 부모에게 돈을 주거나 빌려주고 데려왔다. 하루에 미화 60센트(800원) 정도 벌어 부모들이 ‘빌린’ 150달러에서 180달러의 ‘선불금’을 갚아야 한다. 이 돈을 다 갚을 때까지는 아이들은 주인의 물건처럼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손놀림이 유연해서 축구공을 만들거나 양탄자를 만드는 일에 팔려간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2년 90차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 ‘어린이 노동이 사라진 미래’에서 세계에 2억4600만명의 만 5살에서 17살 사이의 어린이들이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어린이 6명 중 1명꼴인 셈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은 각 나라의 법이나 국제 기준에 따라 아이들이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를 노동력으로 동원하는 사용자는 우선 고용 가능한 최저 연령 기준을 어기는 것이다. 1억1천만명의 어린이가 국제 기준으로 노동을 시켜서는 안 되는 만 15살 미만이다. 부모가 진 빚을 갚기 위해 팔려가서 일하는 강제노동과 매춘산업, 마약 거래와 같은 유해노동에만 840만명의 어린이가 억류되어 있다.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하는 어린이는 3억5천만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제노동기구는 어린이 노동이 많은 나라들의 오래된 빈곤을 ‘공급’ 측면에서의 원인으로, 세계화된 다국적 기업의 생산 체제를 ‘수요’ 측면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가난과 정치·경제적 불안정, 어른도 일자리가 부족한 가운데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 등 교육기관이 없거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 보호망이 전혀 없는 상황이 아이들을 노동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된 기업의 다국적 유연 생산 체제가 어린이 노동을 부추긴다.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업체들이 화려한 최첨단 다국적 기업의 다단계 하청, 재하청 구조의 최하층에 편입되어 생산을 직접 담당한다. 이들은 저수익성과 저생산성 때문에 저임금에 의존하는데, 여기에 어린이 노동이 동원되는 것이다.
월드컵 경기에 쓰는 축구공은 고사리 같은 어린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세계 최대 단일 스포츠 대회인 월드컵 경기를 맞아 우리가 즐기는 축구공을 어린이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어린이 노동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월드컵의 중심에 있는 국제축구연맹(피파)이 세계의 어린이를 위해 나서야 한다. 피파가 상표 사용을 허가한 기업이 생산 과정에 어린이의 노동을 동원하지 못하게 하고, 월드컵 홍보의 일부라도 어린이 노동 문제에 할애한다면 어린이 노동 근절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피파는 적어도 겉으로 표현된 것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
세계인의 관심, 온 국민의 응원, 흘러 넘치는 월드컵 관련 보도 한쪽 구석에서라도 “축구에서 어린이 노동을 추방합시다”, “어린이 노동에 빨간딱지를!” 같은 의미 있는 외침을 찾을 수 없다. 한국 축구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힘의 작은 일부라도 어린이 노동이 사라진 미래를 염원하는 데 쏟는다면 한국의 월드컵 유치는 세계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윤영모/ 민주노총 국제국장
월드컵이여, 어린이 노동에 빨간딱지를!
파키스탄 북부 마호트라라는 마을에 들어서면 길가 창고 같은 건물에 어린이와 어른들이 가죽 조각을 손으로 깁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2살 난 타리크라는 남자아이도 여기서 일한다. 타리크와 같은 10살 안팎 어린이 수천 명이 축구공 만드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나이키 상표가 붙은 공을 만드는데, 공 하나를 깁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린다. 어린이들이 공 하나를 만들면 우리 돈으로 800원을 받는데, 파키스탄 현지 공장에서 이 공을 사려면 8천원, 똑같은 공을 미국에서 사려면 4만원에서 7만원이 든다. 미국이 1년에 수입하는 축구공은 900만 개인데, 이 중 반이 파키스탄에서 생산된다. 공에는 ‘수제품’이라는 설명이 자랑스럽게 찍혀 있다. 바로 어린이들이 손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공장 어린이들은 모두 공장 주인이 이들의 부모에게 돈을 주거나 빌려주고 데려왔다. 하루에 미화 60센트(800원) 정도 벌어 부모들이 ‘빌린’ 150달러에서 180달러의 ‘선불금’을 갚아야 한다. 이 돈을 다 갚을 때까지는 아이들은 주인의 물건처럼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손놀림이 유연해서 축구공을 만들거나 양탄자를 만드는 일에 팔려간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2년 90차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 ‘어린이 노동이 사라진 미래’에서 세계에 2억4600만명의 만 5살에서 17살 사이의 어린이들이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어린이 6명 중 1명꼴인 셈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은 각 나라의 법이나 국제 기준에 따라 아이들이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를 노동력으로 동원하는 사용자는 우선 고용 가능한 최저 연령 기준을 어기는 것이다. 1억1천만명의 어린이가 국제 기준으로 노동을 시켜서는 안 되는 만 15살 미만이다. 부모가 진 빚을 갚기 위해 팔려가서 일하는 강제노동과 매춘산업, 마약 거래와 같은 유해노동에만 840만명의 어린이가 억류되어 있다.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하는 어린이는 3억5천만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제노동기구는 어린이 노동이 많은 나라들의 오래된 빈곤을 ‘공급’ 측면에서의 원인으로, 세계화된 다국적 기업의 생산 체제를 ‘수요’ 측면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가난과 정치·경제적 불안정, 어른도 일자리가 부족한 가운데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 등 교육기관이 없거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 보호망이 전혀 없는 상황이 아이들을 노동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된 기업의 다국적 유연 생산 체제가 어린이 노동을 부추긴다.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업체들이 화려한 최첨단 다국적 기업의 다단계 하청, 재하청 구조의 최하층에 편입되어 생산을 직접 담당한다. 이들은 저수익성과 저생산성 때문에 저임금에 의존하는데, 여기에 어린이 노동이 동원되는 것이다.
월드컵 경기에 쓰는 축구공은 고사리 같은 어린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세계 최대 단일 스포츠 대회인 월드컵 경기를 맞아 우리가 즐기는 축구공을 어린이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어린이 노동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월드컵의 중심에 있는 국제축구연맹(피파)이 세계의 어린이를 위해 나서야 한다. 피파가 상표 사용을 허가한 기업이 생산 과정에 어린이의 노동을 동원하지 못하게 하고, 월드컵 홍보의 일부라도 어린이 노동 문제에 할애한다면 어린이 노동 근절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피파는 적어도 겉으로 표현된 것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
세계인의 관심, 온 국민의 응원, 흘러 넘치는 월드컵 관련 보도 한쪽 구석에서라도 “축구에서 어린이 노동을 추방합시다”, “어린이 노동에 빨간딱지를!” 같은 의미 있는 외침을 찾을 수 없다. 한국 축구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힘의 작은 일부라도 어린이 노동이 사라진 미래를 염원하는 데 쏟는다면 한국의 월드컵 유치는 세계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윤영모/ 민주노총 국제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