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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보도

[성명]노대통령 '분신 투쟁수단 삼는 시대 지났다' 발언에 대해

작성일 2003.11.06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5579
< 민주노총 2003. 11. 6 성명서 1 >

노대통령의 노동자 분신 관련 발언을 듣고

1. 한겨레 11월6일치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며,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대통령은 또 지난 29일 3부 장관 담화문이 자신의 이런 뜻을 담지 못했다며 장관들을 심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2.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충격을 넘어 절망이다. 앞뒤좌우가 없는 짧은 보도내용을 가지고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줄지어 분신하고 목매달아 항거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읽기는 어렵다. 심지어 듣기에 따라서는 영등포경찰서장의 기획분신 발언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까지 고개를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노대통령이 노동자들이 왜 죽음으로 내몰렸으며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해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멀기만 한 거리감을 숨길 수 없다.
도대체 노동자들은 왜 하나 뿐인 목숨을 던졌는가.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이 대통령에게 직접 유서를 남기며 설명하고 있다. 최근 자살한 노동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보내는 유서를 남기거나 항변하는 글을 남겼다.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에 대통령에게 남긴 유서는 대통령의 노동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항의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하면서도 대통령 건강을 걱정하며 숨길 수 없는 기대를 담고 있다.

"대통령께서 예전에 변호사 시절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던 때도 있었지요? …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은 안됩니다. 제가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합니다. 노동자들과 대화는 외면한 채 오로지 노동자 죽이기로 일관하고 있는 악질 기업주들에 대해서 반드시 정부 차원의 대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길이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10.23 분신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이 남긴 유서 '노무현 대통령께' 중에서)

"전 공부방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평등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가르쳐온 내가 이런 현실에 복종하여 참아왔습니다. 인간대접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어찌 학생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제발 저의 고민을 들어주십시요.현실을 참고 묵묵히 학생들에게 남아있어야 합니까? 아님 우리도 인간임을 외치며 우리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말해야 합니까?"(10.26 분신해 10.31 사망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 씨가 노트북에 남긴 '노무현 대통령님께')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 몇 만원.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10.17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유서 중에서)

3. 그러나 죽어간 노동자들의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분신자살 사태 이후 노동문제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오던 노무현 대통령이 첫 말문을 열고 쏟아낸 발언내용은 과연 이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유서를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아스럽다.
우리는 이 마당에 그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쏟아냈던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매도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는 모질고 가혹한 발언들을 다시 거론한 생각은 없다. 다만 분명히 하고픈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과 그에 기초해 펼친 8개월 동안의 노동정책이 노동자들을 잇단 분신자살과 죽음의 행렬로 몰아간 원인 중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라고 절규하며 분신자살한 이용석 씨는 다름 아닌 정부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은 노무현 정권 노동정책의 처음이고 끝이다. 정부기관 내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자살하는 상황까지 이르도록 도대체 뭘 했는가 말이다. 산하기관장이 비정규직노조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조사나 해봤는가 말이다. 8개월 동안 이틀에 한 명씩 144명의 노동자를 구속하고, 철도파업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 이름으로 75억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고 씻을 수 없는 노동자 매도 발언 쏟아내고….

4. 지금도 35m 크레인 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는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을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민정수석은 개인적으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부산 한진중공업노조'라는 존재 자체가 노대통령이나 문수석의 이른바 '노동운동과 연관된 경력'에서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을 때 어쩌면 1991년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 시절 폭압에 맞서 잇단 분신과 죽음의 행렬로 아픈 기억이 돼 남아 있는 1991년 바로 그 해 말이다. 그 해에 한진중공업노조 박창수 위원장이 노태우 정권의 전노협 탈퇴 공작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노대통령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자격으로 진상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했다. 1994년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LNG선 위에서 선상파업을 벌였을 때 고인이 된 김주익 지회장은 당시 노조 사무국장으로 이 파업을 주도한 뒤 구속됐고 그 변호인이 바로 문재인 수석이었다. 왜 그 상황을 모르겠으며 한진재벌의 모진 탄압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당시 적어도 재벌과 독재정권의 노동탄압에 맞서 함께 발을 맞췄던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이 돼 '지금은 민주화됐는데 웬 분신자살이냐, 자살해도 요구를 들어줘선 안 된다'는 극단의 인식에 도달해있다는 점이다. 그 때 그 김주익은 아직도 노동현장에 가해지는 손배가압류와 노동탄압을 못 견디다 하나 뿐인 목숨을 던지며 자살했는데 말이다.
노대통령과 문재인 수석의 정치적 고향 부산에서 한진중공업은 부산을 대표하는 대기업이다. 노대통령이 집권 초기 내세웠던 이른바 대화와 타협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뒤집고 대기업 노동자가 문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대기업 노동자고, 정치화돼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대기업노조이고, 외국투자가를 내쫓아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도 대기업노조라 공격하기 시작하던 6월11일, 김지회장은 35m 크레인에 오른다.
한진재벌의 오기에 찬 노동탄압이 멈추지 않아 김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하던 129일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더 강하고 더 모질고 더 가혹하게 대기업노동자를 공격했고, '21년 근속에 기본급 105만원' 받던 대기업 노동자 김주익 지회장은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고 절규하며 끝내 크레인에서 목을 매고 말았다.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대통령이 됐으니 '민주화된 세상'에서 산다고 느낄지 모르나, 엄청난 당기 순이익을 내고도 임원들만 배당받고 직원들 임금은 동결한 것도 모자라 600여명을 내쫓는 재벌, 이에 저항했다고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끝도 없는 노동탄압에 시달려야 하는 김주익에게 '민주화된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5. 노무현 대통령이 한겨레 보도대로 말하고 생각한다면 노동문제 인식의 문제를 넘어 심하게 말하면 노동자 주검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지난 29일 노동·법무·행자 3부장관의 노동자 분신 관련 담화문에 대해 우리는 당장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1천400억대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 없이 공허한 제도개선 추진만 되풀이 해 실망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3부 담화문조차 너무 노동자에게 온정을 베푼 것이라며 장관들을 질책했다니, 도대체 노동자가 사회적 타살로 내몰리는 노동현실과 대통령의 인식 사이에는 얼마나 넓고 넓은 구만리 장천의 바다가 있는 것이란 말인가. 우리는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에 다시 한번 절망하고 통탄한다. 그리고 분노한다. 부디 비서실에서는 분신 노동자들이 대통령에게 남긴 유서와 지난 11월4일 방송된 mbc PD수첩을 비롯한 언론보도 내용만이라도 다시 챙겨 대통령의 인식부터 바로 잡히도록 해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엄중한 시국은 끝도 없는 평행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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