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수위원장 관련 논평 >
국정원은 박창수 위원장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 협조하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1991년 당시 진상조사단이 타살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검찰에 의해 자살로 조기 결론내려진 이 사건에 대해 '사망 당시 동행자가 있었다'는 목격자의 새로운 진술이 나옴에 따라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의문사위가 밝히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박창수위원장은 동행인과 함께 옥상에 올랐으며 10분 후 쿵 소리가 들린 후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또 이 목격자는 "머리에 붕대를 매고 링겔주사를 맞고 있던 박씨를 동행자가 오른손으론 부축하고 왼손으로는 링겔병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그는 170센티미터 전후의 보통키에 보통체격이었으며 머리가 짧은 군인타입'이라며 동행자의 신체특징까지 생생하게 진술하고 있다.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은 1990년 위원장에 당선된 후 전노협과 대기업연대회의 활동에 앞장서다 구속된 후 1991년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망 전날에도 안기부 직원이 면회하는 등 안기부는 탈퇴공작을 계속하고 있었다.
검찰은 병원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조기 결론을 내리고, 타살의혹을 제기하던 노동자를 공권력으로 짓밟고, 영안실 벽을 함마로 부수고 시신을 탈취하는 만행까지도 서슴치 않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포함되었던 '사인규명 진상조사단'은 타살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우리는 박창수 위원장은 당시 안기부에 의한 전노협과 대기업노조 연대회의 탈퇴 공작 과정에서 살해되었음을 확신한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정보원은 당시 안기부 내 노동관련 부서 담당자의 인적 사항에 대한 자료 협조 등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3년 만에 결정적인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음에도 국정원이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이번에야 말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 민주노동당과 함께 적극 투쟁하면서, 현 국정원도 민주압살 폭압기구였던 안기부와 똑같다고 규정하고 해체투쟁에 나설 것임을 경고한다.
2004.6.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정원은 박창수 위원장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 협조하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1991년 당시 진상조사단이 타살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검찰에 의해 자살로 조기 결론내려진 이 사건에 대해 '사망 당시 동행자가 있었다'는 목격자의 새로운 진술이 나옴에 따라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의문사위가 밝히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박창수위원장은 동행인과 함께 옥상에 올랐으며 10분 후 쿵 소리가 들린 후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또 이 목격자는 "머리에 붕대를 매고 링겔주사를 맞고 있던 박씨를 동행자가 오른손으론 부축하고 왼손으로는 링겔병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그는 170센티미터 전후의 보통키에 보통체격이었으며 머리가 짧은 군인타입'이라며 동행자의 신체특징까지 생생하게 진술하고 있다.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은 1990년 위원장에 당선된 후 전노협과 대기업연대회의 활동에 앞장서다 구속된 후 1991년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망 전날에도 안기부 직원이 면회하는 등 안기부는 탈퇴공작을 계속하고 있었다.
검찰은 병원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조기 결론을 내리고, 타살의혹을 제기하던 노동자를 공권력으로 짓밟고, 영안실 벽을 함마로 부수고 시신을 탈취하는 만행까지도 서슴치 않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포함되었던 '사인규명 진상조사단'은 타살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우리는 박창수 위원장은 당시 안기부에 의한 전노협과 대기업노조 연대회의 탈퇴 공작 과정에서 살해되었음을 확신한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정보원은 당시 안기부 내 노동관련 부서 담당자의 인적 사항에 대한 자료 협조 등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3년 만에 결정적인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음에도 국정원이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이번에야 말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 민주노동당과 함께 적극 투쟁하면서, 현 국정원도 민주압살 폭압기구였던 안기부와 똑같다고 규정하고 해체투쟁에 나설 것임을 경고한다.
2004.6.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